최 법인장 포함 다섯 남자가 서로 손가락를 꼬은후 손등에 술잔을 올려놓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의기~ 투합~~"첫날의 일정은 늦은 저녁 식사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최 법인장은 먼 길을 찾아온 우리 일행을 위해 특별한 술상을 준비했다. 여러 종류의 술을 하나씩 소개하며 헝가리의 역사와 문화를 들려주었다. 술 한 잔에 담긴 이야기를 통해 낯선 나라를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최 법인장이 가장 먼저 소개한 술은 헝가리를 대표하는 토카이(Tokaj) 스위트 화이트 와인이었다.
헝가리 동북부에 위치한 토카이 와인 산지는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고급 와인 생산지다. 특히 이 지역의 대표 와인인 토카이 아수(Tokaji Aszú)는 귀부균(Botrytis cinerea)의 작용으로 포도알이 수축하면서 당분과 향이 농축된 포도를 골라 만든다. 토카이 아수는 꿀과 살구, 말린 과일을 연상시키는 풍부한 향과 달콤한 맛이 특징이다. 특히 높은 당도에도 산미가 균형을 이루어 입안에서 무겁지 않고 우아한 여운을 남긴다.
두 번째는 헝가리의 대표적인 레드 와인인 '황소의 피(Egri Bikavér)'였다.
짙은 루비빛을 띠는 이 와인은 체리와 검붉은 베리류의 향이 어우러져 깊은 풍미를 자랑한다. 적당한 산미와 탄닌이 묵직한 맛을 받쳐 주어 육류 요리와 잘 어울린다. 이름의 유래에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1552년 오스만 제국의 공격에 맞서 에게르성을 지킨 헝가리 병사들이 붉은 포도주를 마셨는데, 이를 본 적군이 병사들이 황소의 피를 마시고 힘을 얻었다고 여겼다는 전설이다.
헝가리의 대표 주류. (좌측부터) 토카이(Tokaj) 스위트 화이트 와인, '황소의 피(Egri Bikavér)' 레드와인, 전통 허브 리큐어인 유니쿰(Unicum) 2종. 세 번째는 헝가리의 전통 허브 리큐어인 유니쿰(Unicum)이었다.
유니쿰은 1790년 황실 주치의였던 츠바크 가문의 조제프 츠바크 박사가 황제 요제프 2세에게 선보였다는 일화에서 유래한 술이다. 황제가 맛을 보고 '이것은 유니쿰(독특한 것)'이라고 감탄하면서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대표적으로 유니쿰 바리스타(Unicum Barista)는 40여 가지 허브를 사용한 기존 유니쿰에 아라비카 커피 추출물을 더하고 오크통에서 숙성한 제품이다. 또 다른 제품인 유니쿰 오렌지 비터(Unicum Orange Bitter)는 기존 유니쿰에 오렌지 증류주와 추출물을 더해 오크통에서 숙성한 허브 리큐어다.
일행은 최 법인장의 설명을 들으며 헝가리 전통주의 다채로운 세계를 경험했다. 술 한 잔에도 역사와 가문의 전통, 현대적인 제품 개발이 함께 담겨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이윽고 최 법인장의 선창에 맞춰 네 남자는 잔을 부딪쳤다. "의기~투합!"
앞으로 펼쳐질 9박 10일의 대장정을 무사히 마치자는 의미였다. 짧은 구호였지만 네 사람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이날 밤의 진짜 하이라이트는 따로 있었다.
최 법인장은 음악에 남다른 조예가 있는 사람이었다. 아파트 거실에는 노래방 기기와 전자 키보드, 신디사이저, 전자 관악기뿐 아니라 트럼펫, 색소폰, 우쿨렐레, 기타 등 다양한 악기가 놓여 있었다.
타국에서 홀로 생활하며 느끼는 외로움을 음악으로 달래 온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음악에 남다른 조예가 있는 최 법인장은이 거실에 구비된 악기로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최 법인장은 우리를 위해 직접 악기를 연주했다. 키보드 연주 실력은 물론이고 여러 악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솜씨도 수준급이었다. 일행이 노래를 부르면 즉석에서 반주까지 맞춰 주었다. 거실은 어느새 작은 음악회장으로 변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가 지금까지 300여 곡의 노래를 작사·작곡하며 습작을 이어 왔다는 점이다.
최 법인장은 이번 여행을 위해 특별히 우리 일행을 위한 노래까지 만들었다고 했다. 트로트 형식의 곡이었다. 직접 들어 보니 50대 후반인 그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형님들의 정서와 여행의 의미를 가사에 담아냈다.
낯선 헝가리 땅에서 살아가는 한 한국인의 외로움과 음악에 대한 열정, 그리고 오랜 인연을 향한 애정이 노래 속에 녹아 있었다. 일행은 노래를 따라 부르고 박수를 치며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술잔과 음악이 오가면서 서로의 마음도 한층 가까워졌다.
시간이 다른 두 시계. 왼쪽은 헝가리 시간, 오른쪽 대한민국 시간이다. 양국은 정확히 7시간 차이가 난다. 시계 좌우에는 유명 음악가와 할슈타트 호수마을 사진이 놓여 있다.자정을 넘기도록 이어진 자축의 밤. 돌이켜보면 이날의 파티는 단순한 여행 전야제가 아니었다. 인생의 또 다른 장을 열기 위해 떠난 네 남자에게 건네는 특별한 축하의 시간이기도 했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보다 익숙한 일상에 머물기 쉽다. 그러나 우리 일행은 달랐다. 짐을 꾸려 국경을 넘고, 낯선 문화를 경험하며, 함께 웃고 노래하는 길을 선택했다.
최 법인장의 음악과 환대는 그 출발을 더욱 빛나게 해 주었다. 인생 3막의 첫 페이지는 그렇게 술과 음악, 그리고 우정으로 채워졌다. (3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