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은 지나갔지만 여행을 향한 열정까지 늙는 것은 아니다. 부산에 사는 60~70대 남자 네 명이 9박 10일 일정으로 중부유럽 대장정에 나섰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출발해 오스트리아와 주변 국가를 넘나드는 여정이다. 이번 여행은 정형화된 패키지 관광과는 달랐다. 현지 지인의 도움을 받아 직접 운전하고, 식재료와 취사도구까지 챙겨 끼니를 해결하는 자립형 자유여행이다. 낯선 도로와 언어, 문화적 차이를 마주하면서도 서로 의지하고 격려하며 새로운 세상에 도전했다. 길 위에서 만난 유럽의 역사와 문화, 현지인의 따뜻한 환대, 뜻밖의 인연과 웃음, 그리고 여행을 통해 다시 발견한 우정과 삶의 의미를 기록한다. 나이는 숫자일 뿐,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기에 늦은 인생이란 없다는 사실을 네 남자의 발걸음으로 보여준다. 이번 연재가 여행을 꿈꾸는 실버세대에게는 용기를, 다음 인생을 준비하는 독자들에게는 새로운 영감을 전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편집자주>
이른 새벽 부산역에서 만나 9박10일 중부유럽 투어에 나선 부산 사나이들. (좌측부터) 류전우, 조철규, 이상철, 이철민.부산역 새벽 5시 19분, 네 남자의 설레는 출발
부산에 거주하는 60~70대 실버세대 남자 네 명이 중부유럽 9박 10일 대장정에 나섰다. 여행의 출발점은 부산역. 22일(목) 꼭두새벽,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시간에 네 남자가 한자리에 모였다.
일행은 최고 연장자인 조철규 대표(전기공사업)를 비롯해 60대 중반의 류전우 대표(와스코사업), 이철민 대표(여행사 운영), 그리고 필자(부산경제신문·유엔지원재단 국장)다.
각자 살아온 삶의 궤적은 달랐지만, 이번 여행만큼은 한마음이었다. 나이를 잠시 내려놓고 낯선 유럽의 풍경과 문화를 온몸으로 경험해 보자는 것이다.
오전 5시 19분. 일행은 경부선 KTX에 몸을 실었다. 2시간 20여 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광명역이었다.
KTX광명역에서 인천공항행 리무진버스 탑승.KTX에서 내린 일행은 곧바로 광명역 도심공항터미널로 이동했다. 대한항공 창구에 도착해 보니 현장에서 탑승수속과 수하물 위탁이 가능했다. 다행히 수속 마감시간을 가까스로 맞춘 덕분에 무거운 캐리어까지 맡길 수 있었다. 손에 들고 있던 짐이 사라지자 한결 홀가분해졌다.
이어 리무진버스에 올라 1시간여를 달려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 도착했다.
늦은 아침은 도가니탕으로 해결했다. 그리고 낮 12시 10분, 헝가리 부다페스트행 대한항공에 탑승했다. 비행시간은 무려 12시간 30분.
긴 비행은 역시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기내에서 두 차례 식사와 한 차례 간식이 제공돼 그나마 견딜 만했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하늘과 구름을 바라보며 일행은 유럽에서 펼쳐질 새로운 여정을 상상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행 대한항공 탑승(위), 기내식과 간식.긴 비행 끝에 마침내 부다페스트에 도착했다.
입국심사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여권을 제출하고 정면 촬영을 한 뒤 검색대에 손바닥을 올리는 것으로 절차가 끝났다. 여권에 입국 도장도 찍지 않았다.
그런데 출국장을 빠져나오려는 순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여성 세관원이 우리 일행을 불러 세운 것이다. 네 명이 함께 여행하는 일행인지 확인한 뒤 조철규·류전우 대표는 통과시켰지만, 필자와 이철민 대표에게는 별도의 짐 검사를 요구했다.
여권을 확인한 세관원은 캐리어와 가방을 열게 한 뒤 직접 내용물을 살폈다. 선물용 담배가 보이자 한 보루가 맞는지 확인했고, 현금 1만 유로 이상을 소지했는지도 물었다. 별다른 문제가 없음을 확인한 뒤에야 여권을 돌려주었다.
공항에는 일률적인 자동검색대 대신 세관원이 여행객을 선별해 직접 확인하는 방식도 있었다. 첫 입국부터 유럽의 공항 풍경을 경험한 셈이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공항에 도착.입국장을 빠져나오자 우리를 기다리는 반가운 얼굴이 있었다. 한국 배터리업체 현지법인 대표인 최모 법인장이었다. 개인 사정으로 이름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삼성SDI 출신인 최 법인장은 9년 전 헝가리로 건너와 현지에 정착했다. 이철민 대표와는 옛 직장 동료이고, 조철규·류전우 대표와도 안면이 있는 사이다. 먼 이국땅에서 만난 한국인의 환대는 그 자체로 든든한 여행의 출발이었다.
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 중국인이 운영하는 아시아마트에 들렀다. 여행 중 직접 조리할 야채와 신선식품 등을 구입하기 위해서였다. 중국과 베트남 식재료가 진열된 매장에는 의외로 한국산 식품도 다양하게 갖춰져 있었다. 낯선 외국 땅에서도 익숙한 한국 식품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중국인이 운영하는 아시아마트. 고추장, 된장 등 한국의 식재료도 많이 진열돼 있다.장을 본 일행은 최 법인장의 아파트로 향했다.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은 정성껏 준비한 저녁 식사였다. 최 법인장이 직접 조리한 음식과 함께 일행은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와 옛 추억을 풀어놓았다.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부산을 떠나 헝가리까지 이어진 긴 여정. 여행의 첫날은 그렇게 낯선 땅에서 만난 반가운 사람의 따뜻한 환대로 마무리됐다.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함께하느냐에 따라 그 풍경이 달라진다. 우리 네 남자의 중부유럽 대장정은 그렇게 사람으로부터 시작됐다.(2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