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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기고] 바다의 타임라인_독도, ‘과학 주권의 요새’ 되어야(5)
  • 기사등록 2026-06-23 23:17:05
  • 기사수정 2026-06-23 23:4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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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철훈 칼럼니스트1948년 8월 15일, 자유대한민국이 탄생했다. 국토도, 국민도, 주권도 되찾았다. 비로소 나라다운 나라가 된 것이다. 그런데 ‘독도의 주권’은 여전히 몸살을 앓고 있었다. 태평양전쟁이 끝나면서 전승국이 패전국 일본의 처리 문제를 다뤘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1952.4.28.)’*1이 발효됐는데, 거기에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를 포함한 한국의 독립을 승인한다”고만 기록했을 뿐, 정작 ‘독도’는 빠져있어서다.  


일본의 끈질긴 로비 결과였다. 당시 ‘주일미국 정치고문’이었던 ‘윌리엄 시볼드(William Sebald)’*2를 설득해 협약 초안(草案)에는 들어있던 ‘독도’를 빼게 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이 조약 결과가 당시 ‘연합국 사령부 기존 원칙’(SCAPIN 677호, “독도를 일본 통치에서 제외”)에 위반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태평양전쟁에서 대한민국은 ‘수혜국(Beneficiary)’일 뿐 ‘교전국(Belligerent)’ 지위를 인정받지 못해 이 회의에 참석 못 했으니 분루만 삼켜야 했다. ‘민족적 항일전’을 ‘미ㆍ영과의 대일 연합전선’으로 확대치 못한 탓일 것이다. 


그림1. 평화선(Seungman Rhee Line)이승만 대통령의 ‘평화선(Seungman Rhee Line)(1952.1.18.)’*3은 이 시점에서 선포되었다(그림 1). 그것도 ‘샌프란시스코 조약’ 발효 ‘3개월 전’이었다. 세계만방에 ‘한일 양국의 평화를 위해서’라 표방했지만 실은, 일제 침탈로 황폐된 연안 어장을 보호하고, 이 ‘평화선’ 안에 독도를 포함함으로써 사실상 이 ‘조약’을 무력화했다. 고도의 전략적ㆍ외교적ㆍ경제적 대응 조치였다! 오늘날 보면, EEZ(배타적 경제수역)의 축소판을 이미 40여 년 전에 선포한 셈이니, 해양경제적인 ‘선구자적 시각’이었다. 실로 李 대통령은 유사 이래 ‘바다를 경제 공간’으로 인식한 최초의 한반도 국정 최고 책임자였다. 이제 일인은 독도에 접근할 수 없게 되었다. 소위 ‘독도 실효 지배’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독도는 다시 수난을 겪는다. 그 ‘평화선’이 13년 만에 ‘한일국교 정상화(1965)’*4로 폐기되어서다. 독도 문제를 “해결하지 않음으로써 해결한다.”는 모호한 합의로 ‘경협자금’을 우선 얻어낸 대가로서다. 이로써 일본이 ‘자국 영토’라는 종래 주장에 ‘잠정적 권원(Title)’을 일부 허용한 꼴이 되었다. 그나마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는 여전히 유효했기에 일본 어선은 감히 독도 근해에 올 수 없었다.  


그림 2. 중간 수역(한일 공동어로구역)그러다 1998년, 독도는 실로 대 수난을 겪는다. 소위 ‘신한일어업협정(1998.9.25)’*5이 체결되면서부터다. 이때부터 독도 주변 해역이 ‘중간 수역(한일 공동어로구역)’(그림2)이 되면서 ‘실효적 지배(경찰 상주)’는 해도, 정작 그 바다 밑 자원과 어획 권리는 일본과 쪼개야 했다.  


당시 ‘IMF 사태’로 국가의 경제적 약점이 크게 노출된 위기상황과 ‘UN의 해양법 발효(1994)’로 세계 바다가 ‘EEZ 시대’로 넘어가면서 주변국과 조속히 어업협정을 매듭지어야 하는 국제적ㆍ외교적 압박에 쫓겨 맺은 조약이다. 그러나 일본으로선, “이때다!” 싶었을 것이다. 이제 ‘중간수역’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에 사실상 ‘독도영유권 주장’의 ‘권원’을 일부 인정한 셈이 되고 말았다. 국제적으로, 향후 완전한 ‘독도영유권’ 보존에 장애요소가 되었다. 다시 한번, 우리가 안용복에게 빚지게 되었다. ‘안용복의 독도’는 ‘땅덩어리의 가치’와 그 주변 바다가 품은 풍성한 ‘해양 자원’을 함께 누리는 ‘주권(Sovereignty)의 실체’였는데, 이제 ‘영토주권’은 있되 ‘경제적ㆍ해양생산적 주권’은 ‘반쪽’이 되어서다. 


먼저 자성(自省)해야 할 건, ‘UN의 해양법 발효(1994)’에 대한 국가적인 사전대응 부족이다. 둘째는, ‘안용복의 바다’가 ‘동해어장의 심장부’라는 인식이 부족했던 탓일 것이다. 일본은 안용복 이전부터 이를 철저히 인식했었다. 왜선들이 울릉도ㆍ독도 주변 해역에 항시 집산했었던 것이 그 증거일 것이다. 

다행인 건, 이 ‘신한일어업협정’이 ‘영구적’이 아니란 점이다. 협정 유효기간이 3년이고, 이후 어느 한쪽이 “협정을 종료시키면” 자동으로 폐기된다. 장차 국익 차원의 타결 방안을 미리 ‘주도면밀’하게 수립해 두어야 하는 건 이 때문이다.  


중요한 건, ① 울릉도ㆍ독도 근해(안용복의 바다)가 ‘동해어장의 심장부’임을 잊어선 안 된다. 일본이 대한민국에 대한 ‘일제(日帝)’ 때 조약을 모두 무효로 했음에도 ‘시마네현 고시 제40호(1905.2.22.)’를 포기 않는 이유가 실상 여기에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② 독도가 ‘섬이 아닌 해안선’이 되도록 ‘유인도(有人島) 지위’를 더욱 굳혀야 한다. 이는 국제법상 ‘독도’가 완전한 EEZ 기점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실질적 근거(권원)가 된다. ③ 안용복의 ‘지식 외교’의 계승이다. 일본이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허점을 파고들었듯, 우리도 안용복에 관한 일본 측 ‘3대 사료’(죽도고, 인부연표, 원록구병자년조선취차일기)를 포함해, 각종 권원 자료(황여전람도, 태정관지령, 고종황제 칙령 41호 등)를 정밀 학습하여 「시마네현의 고시 제40호」가 가진 ‘국제적 위법성’을 적확한 설득언어로 국제 사회에 더욱 강력히 알려야 한다. ④ 협정 종료 조항(6개월 전 통보)을 외교적 카드로 활용할 수 있게 ‘국력’을 키워야 한다. 특히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주도했던 미국의 역할을 ‘독도복원 카드’로 역 활용할 필요가 있다. 당시, 위에 지적했던 ‘SCAPIN 677호’가 유효함에도 미국의 강력한 호응을 못 얻은 건, 한반도에서의 6.25 전쟁의 승패와 이념적 상황이 불명해 반공 보루로 일본이 지목되어서였다. 따라서 상황이 바뀐 오늘날, 되레 미국은 ‘외교적 원군’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한 치밀한 외교전략을 구축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일본은, 1998년 이래 이미 약 30여 년간 반(半) ‘독도 어업 영유권’의 권원을 얻었다 여길 것이다. 그 기간이 길어질수록 불리하니 조속히 ‘완전한 독도 주권’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⑤ 해양수산부는 독도 관련 자료를 상시 업그레이드하고 이를 하부기관에 배포ㆍ학습하고 실리 외교에 활용토록 해야 한다. 


「바다의 타임라인_독도, ‘과학 주권의 요새’ 되어야」인포그래픽1998년 ‘중간수역’ 설정은 사실상 ‘잠정적 악수(握手)’에 불과하다. 그러더라도 독도 주권은 구걸이 아니라 현장에서 증명하고 기록으로 쐐기를 박아야 한다. 안용복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진리다. ‘중간수역’에서 국가기관(국립수산과학원 등)이 수행하는 주기적 정선관측(定線觀測)과 자원량 조사, 어획량, 바다 광물 탐사 등으로 축적된 자료가 곧 독도 현장증명 기록이요, 주권회복을 위한 과학적 물증이 된다. 독도 주변 해양 자원이 풍부해질수록 우리의 주권적 발언권도 커지고, 우리의 ‘강력한 대일 외교적 카드’가 될 수 있음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와는 별도로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이 ‘유엔해양법 298조’*6를 근거로 독도에 대한 UN 해양법재판소의 ‘강제관할권’ 배제를 선언한 건 주목할 만하다. 그간 일본은 ‘독도를 분쟁 지역화’해 국제 사회의 이목을 끌어 독도 문제를 UN으로 가져가려던 의도를 드러내곤 했었다. 노 대통령은 이 ‘선언’을 통해, 대한민국의 영해 및 EEZ 등에 관한 문제를 UN으로 가져갈 수 없게 함으로써 일본의 ‘사법적 도발’을 원천 봉쇄한 셈이다. 독도를 평화적ㆍ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우리로선 실로 “영리하고 단호한 신의 한 수”로 알려진다.*이로써 독도는 오로지 ‘한일간의 외교적 문제’로만 귀착된 셈이다.  


이제 우리는 ‘중간수역’이라는 독도의 모호한 울타리를 넘어 안용복이 당당히 그어놓았던 해상 경계선을 회복해야 한다. 그가 330년 전 일본 막부 관백(關白)인 도쿠가와 쓰나요시(德川綱吉)에게 받아온 ‘도해 금지령’은 오늘날 우리가 되찾아야 할 ‘완전한 해양(어업)주권’의 또 다른 이름이다. ‘안용복’이 ‘주권(Sovereignty)’으로 품었던 독도의 주변 파도는 오늘도 대한민국의 ‘완성된 해답’을 기다리며 출렁거리고 있다. (5부작 끝) 

 

*1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1952.4.28.): 전승국(미국, 영국 등)이 패전국 일본의 처리 문제를 놓고 샌프란시스코(1951.9.8.~1952.4.28)에서 체결된 국제조약. 1952년 4월 28일 발효된 이 조약에,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를 포함한 한국의 독립을 승인한다”라고만 기록되었을 뿐, 정작 ‘독도’는 빠졌다. 일본이 독도 소유를 주장하는 근거 중 하나인 조약. 그러나 이 조약에는 ‘독도가 일본의 영토’라는 구절은 어디에도 없음. 당시 6.25 전쟁의 승패와 이념적 상황이 불명해 반공 보루로 일본이 지목되어 미국의 강력한 호응을 얻지 못했음. 

*2윌리엄 시볼드(William Sebald): 전후 주일미국 정치고문. 일본인 아내를 둔 지일파(知日派)로서 미국의 동북아 전략상 일본을 반공 보루로 삼아야 한다 보고, “독도는 일본 영토”라는 허위 주장을 받아들여 조약 초안에 들어있던 ‘독도’를 빼게 했다. 

*3‘평화선(Seungman Rhee Line): 1952년 1월 18일 이승만 대통령이 세계열강에 선포한 한반도 주변 배타적 경제수역. 여기에 독도가 포함되어 일인이 접근할 수 없었다. 이 대통령은 이 경계선이 한일 간 평화유지에 그 목적이 있다고 밝혔다.  

*4한일국교 정상화: 1965년 6월 22일 대한민국과 일본, 양국의 국교가 정상화되었음. 전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일청구권, 재일교포 법적 지위, 어업, 문화재 등에 관한 조약이 체결되었으나 ‘독도 문제’는 미결로 두었음. 

*5신한일어업협정: 1998년 9월 25일 일본과 맺은 어업수역 및 배타적 경제수역(EEZ) 조정에 관한 협정. 독도가 중간수역에 포함되었다.  

*6‘유엔해양법 298조’: 정식명칭은 해양법 ‘강제절차의 적용에 대한 선택적 배제(Optional exception to applicability of Section 2)’를 지정한 조항이다. UN의 강제 관할에서 배제항목 중 핵심조항(1항)은 주변국과 영해, EEZ 등에 대한 경계 분쟁은 국제해양법재판소의 ‘강제 관할’에서 배제한다는 것이다. 독도 문제는 여기에 해당한다. 이 조항을 근거로, 2006년 노무현 정부는 관련 서한(선언서)을 유엔 사무총장에게 공식제출했고, 공개처리 돼 UN으로부터 받아들여졌다. 지금도 유엔 공식 홈페이지에서 전 세계 모든 국가가 이를 확인할 수 있다. 

*7‘노무현 대통령 독도 특별 연설 동영상’(2006.4.25.): 당시 우리 정부의 독도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선포한 역사적 연설. 대한민국 국정 책임자로서 독도 문제에 대해 대한민국 공식 견해를 밝힌 최초의 연설로 기록되었음. 

 

부경대학교 해양생산시스템관리학부 명예교수  

홍철훈(해양물리학 전공) 

hongch069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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