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기사수정

양제 류제열(94)


[부산경제신문/김해 류창규 기자]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은 본능적으로 기록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돌이나 뼈, 나무 따위에 과거의 일이나 현재를 새기는 행위를 했다. 이를 두고 이른바 원초적 조형활동이라 한다. 이런 활동은 급기야 갑골문이란 위업을 이루었다. 서각의 시원이자 서예의 근원이다. 근본은 은나라시대 갑골문자로 회자된다.


 이처럼 인류의 원초적 조형활동의 시원인 서각. 부산과 경남지역에는 이런 서각에 매료된 인구가 급증하는 추세다. 그래서 서각인들의 활동도 활발하다. 정치인이나 방송인 등 전문가 집단은 물론 일반인들의 입문하는 경향도 늘고 있다.


 오늘날 부산 경남지역의 서각발전의 중심에는 올해 94세의 노령에도 불구하고 현역처럼 작품활동을 이어가는 양제 류재열 선생이 있다. 김영삼 정부 때 대통령이 신한국인으로 지정할 만큼 예술계의 큰획을 그은 양제 선생은 한국적 서각의 초현실주의를 완성해낸 대가다. 국내외 어느 작가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양제 선생만의 독특한 기풍은 그야말로 ‘입신경지’ 그 자체다.


 특히 상형문자, 고분에서 출토된 철갑옷과 창, 칼, 철기와 같은 소재의 곡선적인 표현과 천년의 세월동안 산화(酸化)되고 빛바랜 소재는 오히려 그의 작품을 문학적 은유와 음악적 선율로 숨쉬는 한국적 초현실주의로 승화시켰다.

양제 류재열 선생이 가야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을 복원한 병풍

양제 류재열 선생이 서각계의 거목으로 우뚝 서기까지는 류 옹의 스승이자 근대서각의 효시 처사 배석현 선생의 배려가 녹아 있다. 처사 배석현 선생은 저서나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그는 가야불교의 실체를 발굴하고 알리기 위해 노력한 선구자 중 한 사람이다. 초야에 묻혀 사는 선비라는 뜻에서 '배 처사'라 불렸다.


 그러나 서예와 서각은 그의 일상이었다. 선생은 부산으로 통하는 선암다리에 '가락고도비(駕洛古都碑)'를 세우는가 하면 연화사 중건에 힘을 보탰다. 해은사에 진신사리탑을 세우기도 했다. 이외에도 많은 문화재 복원과 불사를 후원했다.


 특히 처사 배석현 선생은 지역 역사와 전통을 복원하려는 이들에 대한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1975년 <가락국탐사>를 출간한 것도 배석현 선생의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종기 선생의 <가락국탐사>는 가야불교의 남방전래설을 현지에서 입증하려는 첫 시도였다. 그가 당시 인도 아요디아 곳곳에서 관찰한 쌍어와 태양문은 수로왕릉의 그것과의 유사성으로 인해 남방전래설의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


 이 같은 가야사의 실증학적 고증 노력과 선비정신을 양제 류제열 옹이 이어 받았다. 류 옹의 서각세계의 기풍이며 정신은 배 처사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실제 처사 배석현 선생은 류 옹에게 1971년 10월 서예와 목공예 전통예술에 대한 승계증을 하사했다. 이를 이어 양제 류제열 선생은 1997년 3월 청재 박석균에게 승계증을 하사하면서 처사 배석현 선생에서 양제 류제열 옹으로, 또 청재 박석균으로 전통서각의 맥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1971년 처사 배석현 선생이 양제 류재열 선생에게 하사한 승계증

이 같은 류 옹의 작품세계를 전수한 청재 박석균은 후학을 양성하는데 몰두한다. 특히 부산 강서지역을 중심으로 번지는 서각인들의 활동은 체계적 교육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재의 문하생들은 끌과 망치로 나무에 혼을 불어 넣는다. 여기에 채색이 더해지면서 현대서각이란 새 장르에 종착한다. 


 물론 음각과 양각, 음양각의 패턴에 독특한 새김질, 특히 바탕면을 처리하는 끌 맛은 각과 채색이 어우러져 신비한 형상의 작품으로 승환된다. 가장 한국적이며 고전적인 멋. 그러면서 현대적 질감을 품은 채색의 조화는 그야말로 신비 그 자체다.


 20여 년 전. 인제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태동한 '인제서각회'는 서각을 배우고자 하는 인재들의 사관학교나 다름 아니다. 기본에 충실하고 기초를 다지면서 능력을 배양한 인제서각회 회원들은 어느덧 중견 작가로 활동하는 이도 많다. 우리나라 서각계의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김정권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은 수차례에 걸쳐 개인전을 열만큼 수준급 서각인으로 발전했다. 방송인이면서 현재 인제대학교 교수인 천하장사 이만기 씨의 서각솜씨도 부러움을 산다. 


 그 만큼 서각인구는 늘고 있으며 지역예술에 끼치는 영향력도 대단하다. 이런 현상 이면엔 서예로 다져진 기본기에 현대적 감각이 어우러진 이른바 현대서각의 대부 청재 박석균 선생의 열정이 버무려져 있다.


서각... 대를 잇다 청재 박석균은 누구?

청재 박석균(朴石均, 61)은 경남 함안군 출신이다. 부산에서 학창시절을 마친 그는 한 때 서예에 심취한다. 서예학원을 시작으로 사회생활에 뛰어 든 청재는 험난하고 외로운 창조예술의 세계를 접한다. 미술과 서예의 장르에 입문했던 그는 1995년 제3회 부산현대서각 동인전을 필두로 각종 대회에서 수상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 때쯤 그에게 행운이 찾아온다. 양제 류제열 옹을 만났다. 대가는 재목을 알아본다 했던가. 1950년대 이후, 줄곧 한국 서각의 대표적인 작가로 자리매김해온 서각장 류제열(94) 옹이 청재를 수제자로 삼은 것이다. 


 청재 박석균은 날개를 달았다. 70년 서각인생의 대가. 문민정부 시절 신지식인으로 선정된 서각장 류제열 옹의 노하우를 오롯이 전수 받은 행운 때문이다.

0
기사수정
  • 기사등록 2021-05-14 19:47:38
기자프로필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오늘의 주요뉴스더보기
부산은행
부산광역시 상수도사업본부
동양야금공업
원음방송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