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요 접견실에서 활짝 웃고 있는 고 _주홍빛 열꽃 미학 동반한 오묘한 예술성으로의 승화.
선생은 접견실에 있는 스승과 함께 찍은 사진을 바라 보았다. 사진 아래 전시대에는 40년간의 결정의 美學으로 응집된 高麗茶碗들이 400년 전의 문화적 향기를 내뿜으며 강렬한 氣를 발산하고 있었다.
드문드문 독특한 ‘주홍빛 열꽃 美學’을 동반한 그레이 그린 톤의 세련미로 또는 자연의 흙빛을 닮은 너그러움으로 맑고 깊은 가을 산청 단풍 빛깔을 품어 안았다. 또다른 화사한 봄기운을 드리운 엷은 복사꽃과 생강꽃 송이가 만개한 듯 숨막히게 오묘한 예술성으로 승화되어 조용한 미소를 머금게 하는 감동을 전한다.
선생의 내면 세계가 형상화된 창작 고려다완의 깊이는 방금 바다에서 건져 올린 듯한 쪽물 들인 천을 바탕에 깔아 조화로운 균형감각을 갖게한다. 그 위에서 제각각 풍부한 색채감을 지닌 고려다완들은 겸허한 마음으로 자연에 동화된 순수한 세월의 수레바퀴를 굴린 결과의 산물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한다.
선생은 지난 40년 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스승의 말을 따르며 하루 300개의 다완을 물레질을 해 만들었다. 그 중 매일 10개를 골라 굽을 깎았다. 끊임없는 반복적 실험에서 얻어진 고려다완들은 현재 세계무대에서 그 이름값을 하며 존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지리산을 품에 안고 경호강 맑은 물소리가 들려오는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반송)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수
-고향 산청에서 자신과의 약속 실천.
지난 ‘73년 일본에서 도자기 공부 할 때 좋은 도자기 만들면 일본에서 살게 해 주겠다고 하는 조건에 잠깐 마음의 파문이 일었지만 3개월을 고민하다 결국 ’77년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의 심연에는 늘 태어나 자란 고국과 고향 산청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담겨있다. 귀국 당시 20년간 도자기 실험한다는 결심을 굳혔다. ‘남들이 못 만드는 그릇 만들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실천했다. 흙을 매만져 깨고 부수기를 반복했다. 유약과 흙 실험을 계속했다. 지금까지도 그 약속은 어지고 있다.
이후 도요지 답사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 스승 하야시아 세이조 동경국립박물관장과 정양모 국립박물관장이 함께 산청을 방문했다. 두 분의 훌륭한 스승의 권유로 옛 高麗茶碗의 집성터 였던 경남 산청군 단성면 방목리 지리산을 품어 안은 경호강가 고향에 자리를 잡았다.
선생은 ‘지금의 이곳은 처음 8년 동안 나룻배를 건너 다니는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지역이었다. 물론 전화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비가 오면 한 사흘동안은 섬이었다’고 알려주었다. 지금은 너무나 좋은 환경인데도 불구하고 그 때를 돌이키면 그 생활이 얼마나 고달팠을까(?)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일본 도자기(茶碗)계에서는 ‘신과 같은 학자’로 일컬어지는 하야시아 세이조(전 동경국립박물관장)와 한국의 정양모(전 국립박물관장) 두 분 스승의 안내에 따라 순수한 열정으로 高麗茶碗 재현을 위해 외길 40년을 달려왔다. 그동안 흙을 만지고 물레를 돌려 만들고 부수는 반복의 치열한 일상을 구가하며 인고의 세월을 견뎌냈다. 부서버린 도자기 분량이 한 트럭도 넘는다고 했다.
그린 그레이의 주홍빛 열꽃 미학을 동반한 최고의 문화 예술적 가 _스승의 특별한 사랑.
드디어 지난 ‘96년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일본 동경 ‘壺中居’에서 20년을 기다려 온 첫 전시회를 열었다. ‘斗斗居’를 테마로한 高麗茶碗展 이었다. 꿈을 쫓아 하루도 쉼없이 달려 온 외길 인생의 분신들이 찬란하게 조명되었다.
현재 한국과 일본에서는 산청요 민영기 선생의 ‘도도야 다완(사발)’을 으뜸으로 추앙한다. ‘최고의 좋은 도자기 만들면 일본에서 전시해 주겠다’던 스승의 그 말씀 따라 ‘꿈을 쫓아 지금 여기까지 왔다’라며 ‘꿈이 있어야 고통 견뎌낼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술회 했다.
지금도 두 분 스승은 꼭 1년에 2번씩 산청을 방문해 한결같은 애정으로 지도해 주신다. 이 때 ‘하야시아’ 선생 곁에는 사진 속에 있는 그의 수제자 ‘아까노마 다까’가 늘 함께 한다. 산청요 민영기 선생은 ‘일본 전시회를 개최할 때에는 저 세 분들이 무수히 많은 작품들을 가지고 가서 작품 선별을 해 주신다’라고 말하며 ‘名碗’이라 이름 붙여진 것을 안 만져 본 것이 없다고 말해 그의 수준 높은 ‘美學的 안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의 작가들이 그렇게 많아도 고려다완 특별전 작품 디스프레이 할 때 또는 전시 끝내고 작품 철수할 때 하루 날을 잡는다고 했다. 하야시아 스승은 산청요 민영기 선생에게 꼭 작품을 만져 볼 수 있게 하는 분에 넘치는 엄청난 제자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는다고 했다.
하야시아 스승은 2012년 지난 7월 달 전시를 위해 일본에서 6월 20일 폐암 수술 일정을 잡아 놓고서도 5월 말에 산청을 방문해 작품 선별을 해 주셨다. 사진은 그 때 촬영한 것이다. 선생은 그리움을 애써 감췄다. 스승의 뜨거운 제자 사랑이 큰 감동의 물결로 와 닿았다.
한 나라 사람에게 지도 받기도 어렵다. 두 분의 스승 즉 일본 도예계에서 ‘신과 같은 학자’인 하야시아 선생과 한국의 정양모 선생의 애정 어린 격려가 ‘오늘날의 산청요 민영기를 있게 했다’라고 말해 신뢰와 우의로 다져진 그 간의 긴 여정의 끈을 가늠케 했다.
산청요 민영기 선생은 ‘좋은 스승을 만난 것은 대단한 축복이다. 하지만 대단한 스승 뒤에는 스승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엄청난 고통을 동반하는 각고의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이 준엄함을 배제 할 수는 없다. 음식으로 치자면 짜다, 맵다, 달다, 쓰다라는 것과 같이 모르면 쉬운데 알면 알수록 더 어려운 것이 茶碗의 세계이다.’라고 말했다.
일본의 유명 잡지에 수록된 최고의 품격을 자랑하
_꿈에 도전하면 고통을 견딜 수 있는 힘이 있다.
처음 5만개를 만들고 나니 안 보이던 것이 보였다. 또 10만개를 만들고 나니 안 보이던 것이 눈에 보였다. 드디어 30만개를 만들고 나서 보니 입이 딱 벌어졌다. 똑 같은 기물인데도 눈에 드러나는 것은 더 어렵고 해야 할 것은 더욱 많다고 했다. 수 없는 반복을 통한 시행착오의 과정을 밟아 ‘달관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선생은 아직도! , 아직도! .....라고 고개를 가로 저어며 겸손의 미덕을 보였다. 맑은 가을 하늘 흰 구름 같은 순수한 영혼을 간직한 하늘이 내린 예술가임이 분명했다. 한편 산청요 민영기 선생은 이미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는‘한국인의 손재주는 세계적이다’라고 운을 뗐다. 도요지 발굴 다니면서 도자기 신나게 많이 만들어 보았다. 하지만 선생이 펼쳐보인 책속의 앙증맞은 고려다완 술잔에 대한 애착은 선생의 마음속 한 켠에서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은 어찌할 도리가 없는 숙제로 남겨졌다고 했다.
‘식물이 매일 커가는 것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끊임없는 관심과 정성을 기울이면 조금씩 조금씩 성장해 어느날 탄실한 열매를 맺는다. 공부도 그렇고 예술도 마찬가지이다, 성실한 노력을 통해 어느날 혜안이 열린다’라며 모든 일들의 과정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를 발하는지를 일깨웠다.
산청요 민영기 선생에게는 아버지의 길을 따르는 아들이 있다. 선생은 아들에게 늘 ‘우리 조상들이 만든 도자기를 보면 ’멋‘과 ’예우‘를 즐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사회든지 경제와 문화의 바퀴가 함께 가야 서로 상생공존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경제의 바퀴 보다 정신문화의 바퀴가 큰 것은 문제가 없으나 지금의 현실은 그 반대라며 예술가의 길에 입문해 있는 아들에 대한 염려와 안타까움을 표했다.
선생은 ‘꿈에 도전하면 고통을 견딜 수 있는 힘이 있다.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라. 그리고 최고가 되라’고 일상의 채찍을 가한다.
벌써 겨울 준비가 한창인 지리산 대원사 계곡을 지나 찾아간 _역사 문화 정신적 가치로 친환경 힐링의 ‘2013 산청세계전통의약엑스포’ 개최.
‘산청은 과거 선조들이 하던 방식대로 산청의 좋은 물과 산청의 좋은 흙과 불의 3박자가 맞아 떨어진 곳이다.산청의 소중한 자연 자원의 뛰어남은 축복이다.
또한 산청은 웅장한 지리산 천왕봉의 음영 짙은 산그림자와 맑은 경호강의 물살이 자연의 음률을 더한다. 그 가운데 국내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신라 김유신 장군의 증조부인 가야의 마지막 왕 구형왕릉이 있다. 이곳은 왕산의 정기를 간직한 7단 타원형의 돌무덤으로 눈부신 자연의 미학과 과학적 건축미를 더해 애잔한 이야기를 펼치는 곳이다.
또한 여름에는 차고 겨울에는 따뜻한 ‘한천수’로 예부터 위장병과 피부병 등 불치병 치료에 효험이 있다는 신의 류의태 약수터 물은 그 옛날 한약제조에 사용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밖에도 의생활 개혁을 이룬 문익점의 목화 시배지를 비롯해 선종의 구도자로 추앙 받고 있는 불교계의 영원한 스승 성철 대종사의 생가터에 자리잡은 겁외사, 조선의 선비정신 기개를 오롯이 전하고 있는 남명 조식의 산천재가 함께하는 유서 깊은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투철한 문화의식과 역사의식으로 국악교육을 위해 평생을 바친 국악 경전을 완성한 기산 박헌봉, 유럽 5대 작곡가 중 한명으로 선정된 세계적인 현대음악가 윤이상이 태어난 곳, 조선의 양반 가옥이 고스란히 잘 남겨져 있는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제 1호로 선정된 남사예담촌이 있는 명예와 자부심의 고장이다.
물 맑고 공기 좋아 사람 살기 좋은 곳으로 잘 알려져 있는 산청에서는 오는 2013년 9월 6일~10월 20일 까지 45일 동안 ‘2013 산청세계전통의약엑스포’가 개최된다. 현재 산청은 세계 제일 전통의약의 메카로 지리산의 맑은 하늘과 바람, 햇볕 속에서 언제나 자신만의 향기를 간직하고 있는 대자연의 보고이다.
세계인들의 생활 패턴에 새로운 변혁의 바람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2013 산청세계전통의약엑스포’는 지금 그 역사 문화적인 정신적 가치와 더불어 친환경적인 생활속 힐링을 추구하며 세계를 향해 물꼬를 트고 있다. 여기에 순수한 영혼을 지닌 장인의 손재주가 더 해 진다면 세계최고의 도자기 탄생은 산청에서 이뤄질 것이 분명했다.
구마모토 영주 '호소가와 모리히로' 전 일본 총리(79대)가 벌써
_국경 초월해 세계인의 가슴에 감동 전한 고매한 인품.
뿐만 아니라 산청요 민영기 선생에게는 아주 특별한 이력이 늘 따라 다닌다. 세계에서 일본 동경전시가 가장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선생은 ‘120년 된 일본 최고의 역사적 품격을 자랑하는 갤러리 壺中居(호중거)’에서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세 번의 전시회를 가졌다.
일본 동경에는 ‘미쯔이 미술관’이 국보로 지정된 ‘미쯔코시’ 옆에 있다. 그 곳에는 조선시대에 만든 분청 ‘인화문 다완’과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덤벙’이 소장돼 있다. 현재 그 곳의 ‘타나카 회장’은 다실에서 한국 산청요 민영기 선생이 만든 다완을 사용하고 있어 그 중량감을 가늠케 한다.
이밖에도 일본 구마모토(왕) 영주인 호소가와 모리히로 전 총리(79대)가 비서도 없이 네 번씩이나 산청요를 방문해 도자기를 만든 것은 역사에 기록할 만한 특별한 일이다. 특히 산청요 접견실로 들어서는 문 위에 걸려 있는 편액 붓글씨 ‘壺中天(호중천)’은 일본 호소카와 총리가 산청요 첫 방문 이후 손수 써서 편지로 보내왔다. 그 간의 교류가 남다름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번 독도 문제로 시끄러울 때에도 비서없이 경호원을 반납한 채 3박 4일 동안 산청요에 머물면서 작품에 매진했다. 산청요 민영기 선생의 국경을 초월해 자연의 美學을 구가하는 꾸밈없는 예술가적 고매한 인품이 얼마나 큰 진정성으로 세계인의 가슴에 감동을 주고 있는지를 엿 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순수미를 자랑하는 산청요 민영기 선생의 맑 _사물을 보는 눈과 비움의 미학.
아울러 지난 2010년 1월 1일 일본 동경 NHK 신년 특집 국보 ‘이도다완’ 편에 산청 민영기 선생의 다완이 방영되었다. 그리고 한국 KBS ‘한국의 美’ 방송 의뢰가 들어 왔을 때에도 ‘주어진 시간을 사는데 일주일을 넘기면 그 만큼 일을 못하는 것 아닌가(?) 정말로 좋은 최고의 그릇을 만들어야 하는데.....’라는 마음 때문에 2번이나 거절한 끝에 3번째 수락해 7일 간 촬영 방송된 적이 있다. 그래서 선생은 모든 활동을 끊고 겸손한 마음으로 오로지 최고의 茶碗을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이며 정진하고 있다.
선생은 ‘음악도 마음으로 감동을 주 듯 그릇도 마음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 했다. 머리와 손으로 만든 음식보다 정성껏 마음을 다해 맛있는 음식을 만들면 그 감동이 전달된다. 자연을 벗 삼아 잔머리를 쓸 필요가 없기 때문에 도자기는 순수 할 수 밖에 없다. 머릿속을 비우고 순수하게 기물을 보면 많은 오류를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머릿속은 반쯤 비어 있어야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기틀이 된다며 ‘비움의 美學’을 역설했다.
조선시대 도공들은 집단으로 거주했다. 그곳에는 나이든 스승이 늘 함께하며 곁에서 실기를 보였다. 그래서 도공들은 지식은 없었지만 사물을 보는 눈을 가졌다. 아는 것이 많은 사람과 사물을 볼 수 있는 사람과의 차이점은 순수성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이다. 순수성이 결여되면 감동을 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선생은 또한 조선분청에 대한 그 회화적 예술성의 아름다움을 입이 마르고 닳도록 예찬했다. 책을 펼쳐 작품을 보여주면서 분청 도자기에 그려진 ‘마주보고 있는 두 마리의 꺽지가 산란하며 웃고 있다’라고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상식 밖의 물고기가 웃는다는 그 표현은 그 모든 사물을 대하는 선생의 혜안을 발견할 수 있는 최상의 순간이었다. 또한 ‘병아리가 바람을 안고 깃털을 휘날리며 달려간다’든지라는 표현들은 무한의 경지를 가로지르는 해학적이면서도 철학적 예술성을 겸비한 조선도공의 후예임을 입증했다.
모든 행위는 눈높이에서 결정난다. 눈이 높지 않으면 머물러 버린다. 눈을 높이려면 좋은 사람들의 얘기를 많이 들어야 한다. 듣고 좋은 것을 계속 보며 안목을 넓혀 나가야 한다. ‘하야시아 스승의 눈을 내게 넣어 주면 엄청난 작품을 많이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하는 산청요 민영기 선생의 말에서 옛 말에 ‘스승의 그림자도 밟으면 안된다’라고 하는 ‘스승에 대한 畏敬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산청요 민영기 선생댁을 방문한 환경부 특수법인 송민섭 회장과 산청한방약초연구
_일본 롱스테이재단 한국싸롱 코비즈의 한국 고려다완 명장 도자기 투어.
현재 일본의 우라센께이(다인회) 회원은 추산 500만 명이다. 찻자리에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사람 격에 따라 다완이 나온다. 그것은 ‘기능을 넘어선 道의 경지’이다.
한편 일본 롱스테이재단 한국싸롱 코비즈에서는 일본인들을 상대로 한국 高麗茶碗 명장들의 이름을 내건 국내최초 도자기투어를 오는 11월 말부터 실시하기로 해 벌써부터 화제가 되고 있다.
그 첫 번째 주인공이 바로 400년 전 조선의 역사 문화적 향기의 氣를 고스란 재현해 내고 있는 한국 최고의 도예가 산청요 민영기 선생이다. 선생은 이번 투어를 통해 일본인들에게 고려다완은 결코 ‘막사발’이 아닌 최고의 멋과 격을 갖춘 높은 예술성을 지닌 400년 전 역사 문화적 향기가 완벽한 기물임을 인식 시키고자 한다.
고려다완은 일본 막부시대 승전한 장군에게만 주어지던 특별한 하사품이었다. 일본에서는 한 개의 城과도 바꾸지 않을 만큼 귀족중의 귀족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층에서만 사용 되었다. 현재 일본 곳곳에서는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가 일본 귀족들과 결혼한 조선도공들의 후손들이 대를 이어 神적인 대우를 받으며 고려다완을 재현해 가고 있다.
지리산의 맑은 기운을 받은 청정 산청의 산과 들에서 채취한 여러가지 -억겁 예술 영혼 마주하는 영겁의 시간으로 안내되는 감동의 순간 체득.
이번 투어단은 고려다완에 숨어 있는 애잔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국경을 초월한 손끝 창작 도자기 체험을 통해 물과 흙과 불의 대자연이 통섭의 조화를 이뤄 억겁 예술 영혼을 마주하는 영겁의 시간으로 안내되는 감동의 순간을 체득하게 될 것을 내다보고 있다.
박정희 코즈비 회장은 ‘고려다완은 일본에서 국보로 지정돼 있을 만큼 일본인들에게 추앙을 받고 있다. 한국의 자랑스러운 역사 문화적 산물이다.’라며 ‘한국 명장들의 이름을 내건 도자기 투어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기획된 것’ 이라고 말했다. 또한 ‘한국의 명장들을 만나기 위해 일본인들의 발길이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코즈비는 일본 롱스테이재단 회원사이자 최대 여행사인 ’긴키투어‘를 통해 관광객 모집에 나설 예정이다. 1회차당 10~20여명의 소규모 투어단으로 운영될 방침이다. 올해 시범운영을 통해 일본 전역에 홍보한 뒤 내년 2~3월부터는 매월 2회 이상 고려다완 명장들의 명성을 내건 한국 도자기 문화체험 투어를 본격화 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