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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았던 순흥 안찬복 지사(1879.12.9~1945.1.9)의 62주기 추모식이 19일 10시30분 동천고등학교 내 순흥 안찬복지사 추모비 앞에서 열렸다.

추모식에는 부산지방보훈청장, 광복회 부산광역시지부장 및 천도교 종단대표 등 내빈과 유가족, 학생 등 1,500여명이 참석해 안찬복 지사의 독립정신과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기렸다.

순흥 안찬복 선생은 평안남도 안주(安州) 사람으로 천도교(天道敎)인이었으며 1919년 3월3일 김안실(金安實)·김광호(金光浩)·김춘택(金春澤) 등과 함께 안주읍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동했다.

천도교도들이 주동한 이날 시위는 당시 안주 교구장인 김안실이 서울로부터 독립선언서를 전해 받고 천도교 간부인 김광호·김춘택 등과 독립만세시위 계획을 협의, 더 자세한 정보를 알기 위해 읍내 보통학교 교사인 차신정(車信正)을 평양(平壤)으로 파견했다.

차신정이 귀향하여 그곳의 정세를 상세히 알리자, 곧 거사일자를 3월 3일로 결정하여 기독교측에도 연락하고 김기수(金淇洙)로 하여금 군내 천도교 전교실(傳敎室)에 파견해 그들도 동참하도록 권유했다.

3월 3일 오전 11시 율산공원(栗山公園)에 5천여명의 군중이 모이자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고, 대형 태극기와 악대를 선두로 하여 서문연당(西門蓮塘)·공립보통학교·공립농업학교·군청·평양지방법원 안주지청을 거쳐 시가행진을 전개한 후 헌병대에 도착했다.

이때 그도 시위군중과 함께 헌병대를 포위하고 3월1일의 독립만세시위 때 체포된 김화식(金化湜)·박의송(朴義松) 등의 석방을 강력히 요구했으나 일본 헌병들이 갑자기 무차별 사격을 가하여 많은 사상자를 내고 해산됐으나 결국 체포되어 2년 6월형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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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07-10-1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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