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기사수정
 
“풀이라도 뜯으며 편하게 살 수 있도록 해 달라” ‘미스터파크’를 진료하는 수의사에게 곽종수 마주가 내뱉는 얘기는 연신 이말 뿐이었다.

백발이 성성한 노 마주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고, 머리는 흐트러졌으며 안절부절 못했다. 그 모습 어디에서도 마주로서의 품위와 체면 따위를 찾기 힘들었다. 그저 자식을 먼저 보내는 부모의 마음이, 억장이 무너지는 듯한 그 마음만 느껴졌을 뿐이다.

지난 3일, 부경경마공원 일요경마 5경주(1600m, 핸디캡)에 나섰던 ‘미스터파크’(5세, 거, 한국, 통산전적 22전 19승)가 4코너로 진입하던 코너에서 갑자기 마체이상을 보이며 경주를 마치지 못했다. 통산 20번째 우승에 도전하는 경주였지만 실패했다. 우승을 놓친 게 아니라 경주를 마치지 못했다는 게 더욱 아쉬운 대목이었다. 부경경마공원 관람대를 가득 메운 경마팬들 역시 경주를 마치지 못한 ‘미스터파크’를 걱정스런 시선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주행중지 후 곧바로 말 전용 앰뷸런스가 현장으로 투입되어 ‘미스터파크’를 동물병원으로 후송했다. ‘미스터파크’를 초진한 이상규 수의사는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안정제와 진통제를 투여한 후 바로 엑스레이 촬영을 했다”고 밝혔다.

엑스레이상 골절은 아니었다. 이어 초음파 검사에 돌입했다. 그 즈음 곽종수 마주와 김영관 조교사, 마필관리사들이 병원으로 몰려들었다. 하나같이 근심어린 얼굴로 수의사의 진료과정을 지켜봤다.

초음파진단 결과, ‘우전 양측 근위 종자골 원위 인대 단열’이었다는 진단이 나왔다. 골절은 피했지만 경주마로는 치명적인 부상이었다. 수많은 경주마를 관리 담당했던 김영관 조교사는 진단명을 듣는 순간 한숨을 내쉬었다. 경주마 생명이 끝났음은 물론 ‘미스터파크’의 생사 여부도 장담할 수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수의사들 역시 표정이 어두워졌다. 누구하나 선뜻 말문을 열지 못했다. ‘미스터파크’가 갖는 한국경마의 상징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섣불리 안락사를 권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곽종수 마주는 “수술을 통해서 목숨이라도 부지하고 살게 해줄 수 없느냐”고 말했다. 곽종수 마주의 이러한 간절한 소망에 김병현 수의사는 “과거 동일한 부상의 경주마를 수술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러한 수술은 9시간이 넘는 수술시간이 관건이다. 뿐만 아니라, 대다수 수술 후 3일을 넘기지 못하고 결국 모두 생을 마감했다”는 참담한 설명뿐.

순간 ‘미스터파크’가 고통을 호소하며 진료대를 발로 차기 시작한다. 듣기 싫을 만큼 차가운 쇳소리에 동물병원에 퍼지며 병원 안의 정적이 깨진다. 김영관 조교사가 보다 못해 나서 곽종수 마주를 설득했다. “마주님 우리가 판단을 늦게 할수록 파크가 더 힘들어지는 겁니다. 우리 파크를 편하게 보내주자구요”라고 말하는 김영관 조교사에게 곽 마주는 “그건 알겠는데, 그래도 어떻게 내 새끼를 먼저 보내겠어”라며 또다시 눈물을 훔쳤다.

김병현 수의사는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진통제의 투여를 더 늘리고 다리에 부목을 대준 후 “수의학적으로 더 이상 무엇을 해줄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그제야 곽종수 마주는 ‘미스터파크’를 보내기로 결심한 듯, “파크야 미안하다. 파크야 미안해”라며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는 ‘미스터파크’를 끌어안았다. 그렇게 ‘미스터파크’는 안락사 되었다.

아직 6월이었지만 병원에 스며드는 강력한 태양빛이 ‘미스터파크’를 싣고 떠나는 앰뷸런스를 직시하지 못하게 했다. 비단 태양 때문이었으랴. 한국경마 최다연승 기록인 17연승을 세운 불세출의 명마 ‘미스터파크’를 그렇게 허무하게 보내는데, 그 모습을 똑바로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미스터파크’는 안락사(安樂死) 됐다. 어떤 경주마도 남기지 못한 대기록을 남기고, 어떤 경주마보다 강력한 경주능력을 지녔던 경주마 ‘미스터파크’. 그 생에 남긴 족적처럼 강렬한 태양이 내리쬐는 날 영면(永眠)에 들었다.



0
기사수정
  • 기사등록 2012-06-08 00:00:00
기자프로필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오늘의 주요뉴스더보기
부산은행
부산광역시 상수도사업본부
동양야금공업
원음방송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