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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한해만 총 20회 경주에 출주... 최고성적은 3위
- 성적은 못 내지만 나름 밥벌이 하는 강철체력마

“결승선까지 남은거리는 약 100미터. 선두경쟁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장내 아나운서의 격앙된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긴박한 경주흐름을 알린다.

선두로 치고나오려는 추입마들과 선두를 지키려고 갖은 애를 쓰는 선행마들의 막판 선두다툼이 치열한 경주 종반이면 경마중계 아나운서도, 팬들도 관심은 모두 ‘어떤 마필이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하는가?’에 집중 된다.

복승식과 연승식, 삼복승식 등 그 승식에 따라 2위와 3위도 중요한 착순으로 인식되지만 후미에 처진 채 묵묵히 경주로를 달려온 등외 마필들은 우승마와 같은 거리를 달려왔음에도 남는 것은 팬들의 비난과 질책뿐이다.

2000년대 중반,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경주전적 113연패라는 대단한(?)기록을 남기고 은퇴한 경주마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 주인공의 이름은 ‘화창한 봄날’이라는 의미의 ‘하루우라라’라는 경주마였는데, 1998년 데뷔 이후 한 번도 우승을 경험하지 못 한 채 은퇴를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하루우라라’에게 자신의 이름처럼 ‘화창한 봄날’은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하루우라라’를 위해 기꺼이 마권을 사주는 것은 물론, 직접 경마장을 찾아 열띤 응원도 펼쳤다.

세상사가 모두 승자와 패자로 양분되는 현실에서도 항상 지더라도 경주에 나서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달리는 ‘하루우라라’를 보며 당시 심각한 경제난에 빠져있던 일본 국민들은 마음의 위안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부산경남경마공원(본부장 이종대)에도 일본의 ‘하루우라라’와 비슷한 경주마가 있다. 주인공은 바로 ‘글로리엔젤’(5세, 암, 한국, 7조 김병학 조교사)로, 작년 한 해 동안 총 20회 경주에 나섰지만 우승 기록은 한 번도 없었다.

그나마 3위 기록이 2회 있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 되겠다. 경주마들이 보통 한 달에 한번 경주에 나서게 되는데 ‘글로리엔젤’은 한 달에 두 번 가까운 경주출전기록을 가지고 있다.

보통의 경주마들은 경주 출전 후 3주정도 지나야 경주에 나설 수 있는 컨디션이 되지만 ‘글로리엔젤’은 피로회복능력이 여느 마필보다 뛰어났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비록 성적은 하위권이지만 체력으로만 따지자면 부경경마공원 930여 마리의 경주마 중 최고수준이다.

흔히 경주마로서 능력이 없는 마필을 경마관계자들 사이에서 ‘똥말’이라고 낮춰 부르곤 하는데 작년을 기준으로 부경경마공원 최고의 똥말은 단연 ‘글로리엔젤’인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글로리엔젤’이 지금까지 기록한 역대전적 중 최고의 성적은 35전 중 2위 2회가 전부이니 소속조 조교사와 관리사의 입장에서는 속이 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사정이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소속조에서 천대만 받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경주마들은 각 마방의 체계화된 시스템 하에 움직이기 때문에 모든 마필들은 동일한 수준의 대우를 받는다. 동일한 시간에 청소해주고 사료를 먹이고 운동을 시키기 때문에 아무리 성적을 올리지 못하는 마필이라 할지라도 그 시스템 하에서 같은 대접을 받기 때문이다.

실제로 ‘글로리엔젤’의 김병학 조교사 역시 “아무리 우승 못하는 마필이지만 우리 마방의 모든 마필이 다 내 자식처럼 사랑스럽다”면서 “비록 우승기록이 없다지만 경주에 나서서 위탁관리비 정도는 벌고 있으니 나름 자기 밥벌이는 하는 놈 아니냐”고 말했다. 이어 “매번 출전 할 때마다 우승을 원하는 게 사실이지만 그보다 탈 없이 경주를 무사히 마치고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크다”라고 토로한다.

경마의 속성상 어떤 마필이 우승을 차지하느냐에 모든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그렇지만 우승마가 있음은 그 뒤를 따르는 수많은 꼴찌마가 있기 때문에 우승이 가능한 게 아니겠는가?

때문에 그 우승이 더욱 빛나는 것이다. 이번 주에는 부경경마공원을 찾아 우승마를 위한 환호를 조금 아꼈다가 ‘끝까지 최선을 다해 준’ 나머지 꼴지 마필들에게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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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2-02-1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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