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이스라엘과 이란은 서로를 향해 가장 강한 적대감을 드러내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군사적 긴장과 정치적 충돌이 이어지면서 두 나라는 마치 태생적으로 원수였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역사를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 보면 두 나라의 관계는 전혀 다른 모습에서 출발했다.
성경 속에서 시작된 역사적 인연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 가운데 하나는 바빌론 유수(幽囚: 잡아 가둠) 이후의 회복이다. 기원전 6세기 유다 왕국은 바빌론 제국에 의해 멸망했고 많은 유대인들이 포로로 끌려갔다. 그러나 페르시아 제국의 왕 키루스 2세(고레스)가 바빌론을 정복하면서 상황은 바뀐다. 그는 포로로 잡혀 있던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재건할 자유를 허락했다. 이 사건은 구약성경의 에스라서와 이사야서에 기록되어 있으며, 유대 민족에게 페르시아는 민족 회복의 은혜를 베푼 나라로 기억된다. 고대 페르시아는 바로 오늘날 이란의 역사적 뿌리다. 따라서 성경의 역사 속에서 보면 이란의 조상 국가가 이스라엘의 회복에 중요한 역할을 한 셈이다.
현대 역사 속의 협력 관계
현대에서도 두 나라가 처음부터 적대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었을 때 대부분의 아랍 국가들은 이를 반대하며 전쟁에 돌입했다. 그러나 당시 이란은 아랍 국가가 아니었고, 오히려 비교적 협력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당시 이란은 모하마드 레자 팔레비 국왕이 통치하던 친서방 왕정 국가였다. 석유 협력과 정보 교류, 군사 협력까지 이루어지며 이란은 중동에서 이스라엘과 관계를 유지한 몇 안 되는 나라 가운데 하나였다. 이 시기 두 나라는 서로를 전략적 파트너로 인식하며 비교적 안정적인 관계를 이어 갔다.

1979년, 모든 것을 바꾼 혁명
두 나라의 관계를 완전히 뒤집은 사건은 1979년에 일어난 이란 혁명이다. 종교 지도자 루홀라 호메이니가 이끄는 혁명 세력이 왕정을 무너뜨리고 이슬람 신정체제를 세우면서 이란의 외교 노선은 급격히 바뀌었다. 새로운 정권은 강력한 반미 정책과 함께 반이스라엘 정책을 채택했다. 이란 지도부는 이스라엘을 중동에서 제거해야 할 국가로 규정했고, 이후 두 나라의 관계는 극단적인 적대 관계로 변화했다.
중동 정치의 복잡한 구조
중동 정세를 이해하려면 종교와 정치의 복잡한 구조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슬람 세계는 크게 시아파와 수니파로 나뉜다. 이란은 시아파의 중심 국가이고, 사우디아라비아는 수니파의 대표 국가다. 이 종파 경쟁은 중동 정치의 또 다른 긴장을 만들어 왔다. 이러한 종교·정치적 갈등 속에서 이란과 이스라엘의 대립은 중동 정세의 핵심 축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다.
역사가 던지는 질문
오늘날 이란과 이스라엘은 서로를 향해 가장 강한 적대감을 드러내는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보면 두 나라의 관계는 단순한 적대의 역사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성경의 기록 속에서 페르시아는 이스라엘을 포로 생활에서 해방시킨 나라였고, 현대 역사에서도 한때 협력 관계를 유지한 시기가 있었다. 역사는 때때로 이렇게 묻는다. 지금의 적대 관계가 영원한 것일까, 아니면 또 다른 변화의 한 과정일 뿐일까. 중동의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그러나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면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하다. 오늘의 적대가 반드시 영원한 운명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상철(본지 편집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