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이정자지난 7월 31일 한미 양국은 상호관세의 극적인 합의 소식을 전했다. 미국이 예고했던 상호관세 25% 부과를 15%로 낮추고 한국의 주요 수출 품목인 자동차도 15% 수준에서 합의됐다고 밝혔다. 반도체와 의약품에 대해서는 추후 품목 관세 협상에서 최혜국 대우를 보장받기로 했다. 대신 한국은 총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
한미 관세 협상은 큰 고비를 넘었다는 평가와 함께 한국 수출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돌파구로 여겨졌다. 그러나 불과 두 달 만에 협상은 다시 교착에 빠져 있다.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를 두고 한국과 미국의 해석이 정면으로 엇갈리면서다. 이재명 대통령은 통화스와프(통화 맞교환 계약) 없이 미국이 요구하는 방식으로 3500억 달러 전액을 현금으로 투자한다면 한국은 1997년 금융 위기와 같은 상황에 직면할 것(지난달 22일 로이터통신 인터뷰)이라고 우려를 드러냈다.
현실화된 자동차 25% 등 관세 리스크 속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조건을 둘러싼 이견 장기화가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과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3500억 달러, 우리 돈 약 487조 원 규모 이 중 1500억 달러는 미국 조선업에 대한 전용 투자 펀드로 설정돼 선박 건조, MRO(유지·보수·정비), 기자재 등 조선업 전반에 투입되기로 했다. 나머지 2000억 달러는 조선 분야 이외에 반도체, 핵발전, 2차 전지 등 전략산업에 투자한다는 구상이다. 대통령실은 대부분 보증과 대출로 구성되고 직접 투자는 매우 제한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백악관에서 일본에서는 5500억 달러, 한국에서는 3500억 달러를 받는다. 이것은 선불(upfront)이라고 못 박았다. 러트닉 상무장관은 지난달 11일 미 CNBC 방송 인터뷰에서 유연함은 없다. 한국은 그 협정을 수용하거나 25% 관세를 내야 한다는 것이 명확하다며 지난 7월 30일 합의에서 이견을 보이는 3500억 달러 투자 부분에 대해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라고 압박했다.
현재 3천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를 놓고 한미 양국은 평행선을 그리고 있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3천500억 달러를 선불로 언급한 것은 그것이 한국에 대한 관세 인하의 전제조건임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한미는 지난 7월 30일 타결한 무역 협상에서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상호관세와 자동차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대신 한국은 3천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등을 시행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이 세부 사항에 대해 이견을 보이면서 한미 간 무역 협정이 아직 문서화되지 않고 있다.
한국은 지분 투자를 최소화하고 대부분을 보증으로 하려고 하지만, 미국은 지분 투자 방식으로 달러 현금을 한국에서 받아 투자처를 미국이 결정하고 투자 이익도 미국이 90%를 가져가는 등의 일본식 합의를 요구하고 있다.
대통령실은 공개적으로 난색을 표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통화스와프 없이 미국이 요구하는 방식으로 3500억 달러를 인출해 전액 현금으로 투자한다면 한국은 1997년 금융위기와 같은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통화스와프(통화 맞교환 계약) 등 안전 장치 없이 미국 요구를 받아들일 경우 한국 경제가 외환 위기에 버금가는 충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다.
이 대통령은 실무 협상에서 제시된 제안들은 상업적 타당성을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에 격차를 메우기가 어렵다. 상업적 합리성을 보장하는 세부적인 합의에 도달하는 것이 이제 핵심 과제이지만, 동시에 가장 큰 장애물이기도 하다고 난색을 표하며 동맹 사이에서는 최소한의 합리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
오는 10월 말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협상의 분수령으로 꼽히는 가운데 정부는 상업적 합리성이 맞고, 우리나라가 감내할 수 있고, 우리 국익에 부합하고, 한미 간 상호 호혜적 결과를 도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협상을 한다면 협상 시한 때문에 원칙을 희생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APEC에서 이뤄질 한미 정상회담이 미국의 3500억 달러 현금 투자 요구를 넘어 관세 협상의 불확실성을 해소할 전환점이 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