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철훈 칼럼니스트
홍철훈 칼럼니스트본시 당대의 상식을 뛰어넘는 생각은 사람들에게 흔히 배척의 대상이 된다. 이미 이천오백여 년 전 플라톤의 ‘국가론’에서 지적되었고, 프랜시스 베이컨은 ‘동굴의 우상(偶像)’ 탓으로 표현하였다. 오늘날 지구상에서 발생하는 지질학적인 대다수 현상을 설명하는데 가장 중요한 이론이 된 소위 ‘판구조론(板構造論; Plate tectonics)’의 시초인 알프레드 베게너(Alfred Wegener)의 ‘대륙이동설’(1912년)도 당대에는 배척되었다.
그의 주장은 한마디로, ‘옛날 지구의 모든 대륙이 하나로 붙어있었다가 오늘날처럼 떨어졌다.’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육지대륙이 바다지각보다 가벼워 마치 빙산처럼 떠다닐 수 있어서고, 그 구동력은 태양과 달의 조력(潮力)이라고 설명했다. 또 증거로서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대륙의 동ㆍ서안이 각각 퍼즐 조각처럼 닮았고 이들 대륙에만 서식하는 동식물의 유사 종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륙을 움직이는 ‘구동력’이 태양과 달의 조력만으로는 너무 미약하다는 결정적인 이유로 그의 이론은 사장(死藏)되고 말았다. 그가 고층기상관측기술을 연구한 기상학자였던 점도 당대의 지질학자들에게 무시된 또 다른 이유이기도 했다.
그의 생전에는 묻혔던 그의 이론은 1950년 후반 들어 찬연한 빛을 발하게 된다. 해저지각에 남아있는 지자기 방향이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는 것이 발견되면서부터다. 그러니까 해저지각의 지자기 방향은 늘 고정되어있어야 함에도 변한다는 건 곧 ‘해저지각의 이동’을 뜻하기 때문이었다. 뒤이어 해저지각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해양판’이고 맨틀에서의 열 방출이 근본 에너지원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이제는 ‘판구조론’이라는 이름으로 학계 모든 분야에서 인정하는 정설(定說)이 되었다.
‘판구조론’을 간단히 정리하면, 지표면이 퍼즐처럼, 육지든 바다든 수 개의 판(板, plate)으로 구성되어 있고 시시각각 판마다 어떤 정해진 방향으로 좌우 사방 움직인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건, 이동하다 판끼리 서로 수렴하면서 산맥도 만들고 발산하면서 바다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런 판 구조 현상이 대략 5억4천만 년 전부터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하니 놀랍기 그지없다. 예컨대, 대서양 한가운데를 남북으로 가로지른 중앙해령도 아프리카판과 아메리카판이 각각 동서로 이동(발산)하면서 생긴 해저분출로 형성됐고, 히말라야산맥은 유라시아판을 향한 인도판의 북상(수렴)으로 지각이 분출되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일본에 그 흔한 지진도 태평양판이 북상하여 필리핀판과 유라시아판 밑으로 파고들면서 발생한다 하고, 우리나라가 지진이 적은 이유는 비교적 지각이 안정된 유라시아판에 놓여 있기 때문이라 한다. 우리에겐 행운인 셈이다. 또 그런 판 이동속도가 대서양 중앙 해령을 예로 볼 때 연간 10~40mm로서 실로 ‘손톱이 자라는 속도’와 거의 비슷하다고 한다. 현재 태양계에서 판 구조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지구뿐이라는 것도 흥미롭다. 그 까닭은, 지구의 질량보다 큰 암석질 행성에서만 판 구조 운동이 일어나는데, 그 임계질량을 넘기도록 도와주는 게 지구상의 ‘바닷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다른 행성의 경우 바닷물이 없어 판 구조 운동이 생기기 어렵다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당대에 인정받지 못하다 사후에 그 가치와 업적이 더욱 빛난 인물들이 많다. 생전에 그림을 단 1점 밖에 못 팔고 정신병 환자로 조롱받았으나 사후 현대 미술의 거장으로 재평가된 고흐(Vincent van Gogh), 에디슨에 밀리고 말년엔 빈곤과 망상 속에 죽었으나 사후엔 전기공학과 현대 기술혁명의 아이콘이 된 테슬라(Nikola Tesla)가 다 그런 인물이었다. 당대에 이론이 무시되고 지질학자들에게 비웃음만 받았던 ‘판구조론’의 아버지가 된 베게너(Wegener) 역시 그들 중 한 사람이었다. 인류의 역사는 이런 인물들 속에서 더욱 발전되어 왔다. 어찌 생전의 입신양명만을 가치 있다 하겠는가!
부경대학교 해양생산시스템관리학부 명예교수
홍철훈(해양물리학·어장학 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