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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열 화명고등학교 교장
우리꽃 우리나무 연구소 대표 
대운산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이 모이는 정관의 병산 저수지를 출발한 좌광천은 장장 약 20km를 흘러 동해의 임랑해수욕장으로 흘러 들어간다. 2025년에 기초자치단체 역사상 처음으로 지방 정원으로 등록된 하천으로 대운산과 달음산에 둘러싸인 정관 분지를 가로질러 박태준 생가 기념관을 지나 임랑해변으로 이어지는 생태 보고인 부산의 자랑이다.


어름과 다래 그리고 머루를 아직 볼 수 있고 사약 재료로 유명한 천남성과 현호색이 철 따라 피고 지는 대운산 골짜기에서 출발하면서 좌광천은 부산에서 보기 드문 생태의 축복을 다 누리고 시작된다. 대도시 주변에서 이렇게 생태계가 잘 보전된 지역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좌광천의 출발지 환경이 뛰어나다. 계곡을 흘러내린 청정수가 일단 병산 저수지에 모여서 한숨 돌리고 긴 장정을 떠날 채비를 한다. 주변 골짜기마다 산촌의 모습을 벗어나서 아름다운 카페가 들어서고 풍경을 바꾸고 있지만 환경오염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날로 높아지고 행정당국의 적극 행정의 덕택으로 우수한 환경 생태가 잘 유지되고 있다.


정관의 모전교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걷기 길과 자전거길은 가장 잘 관리되고 있는 산책로로 유명한데, 사실은 그 주변에 가꾸어져 있는 다양한 들꽃이 그 유명세를 한층 더 높이고 있다. 아마도 지방자치제가 시행되면서 경쟁적으로 벌이는 다양한 사업 벌이기라는 거대한 파도에 밀려서 시행되었더라도 그 관리와 유지가 쉽지 않은데 좌광천의 ‘꽃길’ 유지관리는 참으로 이상적으로 잘 되고 있어 산책객들에게 무한 힐링을 준다.


모전교 아래 둑길에는 벌노랑이가 샛노란 꽃을 뭉실뭉실 피워서 봄을 한껏 즐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넓은 벌판’처럼 풍요롭게 한다. 그래서 꽃 이름이 ‘벌노랑이’이다. 맞은편 오래된 마을과 맞닿은 좌광천 둑에는 수국이 해마다 풍성하게 꽃을 피우고 잔디밭에 듬성듬성 섞여 피는 토끼풀 클로버꽃도 생명을 찬양한다.


철 따라 꽃무릇이 발갛게 무더기로 피어나고, 장미공원에는 세계 모든 종류의 장미꽃이 5월을 화려하게 수놓으며 시민들을 향기 속으로 끌어모은다. 중앙공원이 가까워지면 차(茶) 나무의 연둣빛을 머금은 하얀 꽃이 앙증맞게 피어서 낮은 숲을 이루고 있다. 맥문동의 보라색 꽃이 여름 내내 피어있고, 노랑으로 핀 원추리꽃과 불그스름 왕원추리꽃도 강한 여름 햇볕을 견뎌내고 있다. 능수버들이 길게 늘어뜨린 잔가지로 찾는 이들을 반겨주고 보기 드문 하늘타리 하늘 수박이 레이스 달린 화창한 흰 꽃을 피웠다가 수박처럼 파랗게 열매가 달리고 가을에는 노랗게 익어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꽃양귀비가 화려하다 못해 요염한 빨강 꽃을 자랑하는 모양새가 군데군데 보이고 찔레꽃이 연분홍으로 피었다가 하얀 꽃으로 진다. 


중앙공원이 가까워지면 좌광천 변을 갯버들이 늘어서서 하얀 실뿌리를 물속에 뻗어내면서 물을 맑게 정화하느라 무척이나 분주해 보인다. 그 곁으로 때죽나무가 하얀색 별을 닮은 꽃을 무더기로 피워올려 화사함을 배가시킨다. 좀 더 내려가면 군데군데 도둑놈의 지팡이(고삼)가 아카시아꽃을 닮은 상아색 꽃을 총상꽃차례에 길게 늘어뜨리고 핀다. 뿌리가 너무나 흉측하게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 곱지 않지만, 그 꽃은 매우 화려하여 보는 이를 웃음 짓게 한다.


이른 봄이 오면 여기저기 토종 물고기들이 알 낳을 곳을 찾아 자리다툼 하느라고 첨벙거리는 광경도 눈에 띈다. 주로 잉어들이 왕좌를 지키고 있고, 붕어와 피라미들도 한자리씩 차지하고 물속을 헤집고 다닌다.


중앙공원에 넓게 조성된 잔디밭이 시원하게 마음을 풀어주고 꽃사과나무, 산수유, 산딸나무꽃이 계절마다 각양각색의 얼굴로 산책객을 맞이한다. 천변에 잘 조성된 공연장 옆으로 높이 솟은 재래종 버드나무가 과거 이곳이 바로 좌광천이 넓은 들판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지점이란 것을 알려주고 있다. 지금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재래종 버드나무는 과거에 논둑의 방천을 예방하기 위해 식재하고 다 자란 나무는 주로 성냥공장에 들어가서 성냥개비 재료로 쓰였다.


옛날 시골에서 봄철에 쑥을 캐던 아가씨가 인근의 불쟁이(대장장이)를 몰래 사모하다 결국 상사병으로 죽고 그 자리에 피어난 꽃 쑥부쟁이가 가을이 되면 잘 조성된 화단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잘 자라서 연보라 들국화를 피우고 있을 즈음에 그냥 강둑 여기저기에 개쑥부쟁이가 함께 잘도 꽃을 피우고 있다. 덩달아 들국화 가족들이 ‘저요! 저요!’ 하면서 감국, 산국 그리고 구절초가 끼어들어 가을을 살찌운다.


정관 시내의 아파트 단지가 끝나가는 지점부터는 인위적으로 조성된 화단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의 들꽃들이 철마다 만발하여 계절을 알려준다. 넓은 바위들이 천 바닥에 널려 있고 좌광천이 약간 굽어지는 이 지점쯤에는 물가를 유난히 좋아하는 왕호장근을 닮은 감절대가 봄이 되면 마치 대나무 죽순처럼 큰 키로 자라난다. 마디풀과 식물인 감절대는 과거 농촌에서 봄철에 싱아와 더불어 맛있는 나물로 채취하여 먹었다. 여름철에 자잘하고 푸짐하지만 크게 화려하지 않은 수수한 꽃을 많이 피운다.


이미 널리 퍼져서 이제는 거의 토종화 되어버린 방가지똥, 가시상추, 단풍잎 돼지풀, 개망초, 금계국이 유난히 많이 자라 좌광천이 끝나는 지점까지 퍼져나가 있다. 이들 모두는 환경부 지정 생태교란종 식물이지만, 그중에서 가시상추는 들나물로 먹기도 한다. 그 외의 외래종 생태교란종 식물들은 하루가 다르게 세력권을 넓혀간다. 이제 사실상 완전 제거는 가능성이 점점 엷어 보인다. 단풍잎 돼지풀은 다른 식물이 자라지 못하도록 빽빽하게 땅을 차지하고 높은 키로 햇볕을 가리고, 가시박은 주위의 모든 식물을 뒤덮어서 말라 죽게 한다. 그나마 금계국은 비록 세력을 자꾸 넓혀서 다른 식물의 영역을 사라지게 하지만, 꽃이 화려하고 꽃차로 이용하는 사람이 있어 쉽게 사라질 것 같지 않다.


달음산 아래 거대한 정관신도시 폐기물 처리장이 있는 곳에 다다르면 겨울철에도 좌광천에 따뜻한 물을 내보내는 처리장 덕분에 온갖 새들이 떼로 몰려들어 저들만의 온천을 즐긴다. 흰뺨검둥오리, 쇠백로, 중대백로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추운 날씨에도 뭉게뭉게 하얀 수증기를 피우며 온천욕에 바쁘다. 


거의 바른 방향으로 잘도 흐르던 좌광천이 처리장이 끝나는 지점에서 큰 달음산 자락 높은 언덕을 만나 방향을 급히 좌회전하면서 큰물이 날 때마다 무너져 내리던 절벽도 이제 튼튼한 보수공사로 더 이상 무너져 내리지 않게 된 지점에 강변 산책객 위 강둑길 변에는 해마다 곰처럼 털이 복실 복실 많이 돋아난 곰딸기가 무더기 분홍색 꽃을 피우고 이내 빨강 딸기를 맺는다.


그 절벽 지점을 지나자마자 갯버들이 천을 따라 조금 더 내려가면 택지 조성된 반대쪽으로 빼곡이 자란 수크령밭이 나온다. 그령처럼 생겼지만 전혀 다른 ‘숫그령’이라는 어원처럼 남성을 상징하는 것 인양 굵은 꽃이삭이 검보라색으로 무리 지어 피어난다. 이 수크령밭에는 요즘 한창 인기가 많은 ‘야관문’이 또한 함께 군생한다. 옛날에는 빗자루 만드는 재료로 사용되었지만, 오늘날에는 시대 상황이 반영되어 강정제로 이용한다고 요란하다.


불광사 아래 다리를 지나기 직전에 오래된 버드나무가 높은 키를 자랑하고 두 그루 버티고 서서 참매미 요란하게 울어대는 텃세를 누리는 곳이 되었다. 이 부근에서 자주 나타나는 고라니 가족을 가끔식 볼 수 있다. 달음산과 산을 나누어 버리는 좌광천을 건너서 이리저리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고라니는 역시 영어식 이름(water deer)처럼 물을 아주 좋아하나 보다. 잘 놀다가 갑자기 나타난 길손을 보고 저가 도리어 더 놀라서 후다닥 도망가기 바쁘다.


다리를 지나면 바로 허름한 농막인지 농가인지 한 채가 나타나고 나이 지긋한 농막 주인 할아버지의 트로트 노래가 하루 종일 틀어 놓은 라디오에서 시원하게 들려온다. 이어서 유명한 미나리 논이 널찍하게 나타나고 한겨울에도 물을 가득 실어둔 덕택에 파릇파릇 미나리가 먹음직스럽게 수북수북 잘도 자란다. 간이 천막 속에 추위를 막아줄 나무 난로를 켜둔 채로 미나리 고르기 작업이 한창인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한겨울이 옛 시골 풍경을 일깨워 준다.


‘미나리꽝’ 앞으로 굽이쳐 돌아가는 좌광천이 거의 180도로 고개를 돌린다. 이 지점에는 큰 잉어들뿐만 아니라 자라가 서식하고 있다. 제법 크게 자란 자라가 수시로 머리를 내밀고 숨을 고른다. 마치 예천 회룡포, 영주 물돌이 마을, 안동 하회마을처럼 이 지점에서 좌광천이 이 미나리꽝을 비켜 흐르며 큰 호(弧)를 그리고 그 물길을 돌려 산자락 끝을 빙 돌아 달음산에 바짝 기댄 채 방향을 바꾼다.


이 ‘물돌이’ 지점을 지나면 곧바로 좌우 양측으로 기암절벽이 나타나고 왼편 절벽에서는 낙락장송이 절개를 뽐내고 그 아래에 누리장나무가 화려한 붉고 흰 풍성한 꽃을 피운다. 계절을 잘 만나면 잘 영근 산딸기가 기생 입술보다 더 붉은 열매를 길손에게 내주기도 한다. 오른편으로 가파른 절벽은 낙화암보다 오히려 더 웅장한 자태로 진달래와 수달래를 차례로 피우고 중대백로, 쇠백로, 가마우지, 그리고 흰뺨검둥오리와 물닭 등등 온갖 새들의 자유비행을 여유롭게 즐기고 버티어 서 있다. 


걸음을 몇 걸음 더 하류로 옮기면 제법 넓은 물막이 보(洑)가 나타난다. 여기는 요즘 보기 드문 진객이 자주 출몰한다. 바로 수달이다. 물고기 사냥의 귀재요 물속의 속도 초월자 스프린터(sprinter)인 수달은 그 유연한 자체로 수시로 물속을 헤집고 다니며 사냥한다고 분주하여 길손의 눈길을 별로 꺼리지 않는 것 같다. 보(洑)에서 물이 흘러가는 수로를 따라 미끄럼까지 타는 재롱도 어쩌다 볼 수 있다.

보(洑) 근처의 걷기길 옆으로 쌓아둔 돌담은 족제비가 열심히 먹이 활동을 하는 곳이다. 엉기성기 쌓아둔 돌 사이 비어 있는 공간은 족제비가 분양받은 보금자리다. 불과 40여 년 전만 해도 농촌에서 흔히 만났던 들짐승이지만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추억 속에서나 나타나는 희귀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너무 오랜만에 보는 동물인지라 한참 자세히 바라보고 싶었지만, 그 짧은 다리로도 어찌나 빨리 굴속으로 도망가 버리는지 아쉬움을 남긴다.


군데군데 나타나는 모래밭이나 빈 풀밭에는 늦은 봄에 야생 갓이 노란 꽃을 풍성하게 피우고 군락을 이루어 봄기운을 북돋워 준다. 다른 강가에는 이미 이른 봄철에 유채꽃이 한껏 노랑 세상을 자랑하고 다 지고 사라졌지만, 좌광천에는 아쉬운 듯 야생 갓이 뒤늦게 노랑 나라를 만든다. 유채꽃과 야생 갓꽃을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가장 쉽게 구별하는 방법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시기 차이다. 아주 이른 봄에 유채꽃이 샛노랗게 먼저 피어나고, 유채꽃이 씨앗을 맺고 다 사라지면, 뒤늦게 야생 갓이 바통을 받아 노랑 꽃을 피운다. 둘째, 유채와 야생 갓은 색과 감촉이 비슷한 듯하지만 다르다. 유채는 잎과 줄기가 완전히 연녹색으로 전체에 털이 전혀 없다. 반면에 야생 갓은 잎과 줄기가 푸른색에 짙은 보라색이 첨가된 색이며 몸 전체에 작은 털이 나 있다.


다음 기고 글은 장안 신도시 옆에서 출발하여 임랑해수욕장까지 좌광천을 따라 이어가는 생태탐방 들꽃 기행을 기약한다. <좌광천 생태탐방 들꽃 기행 (2)>에서 만나자!



이상열

들꽃 기행 1, 2 저자 · 우리 꽃 우리 나무 연구소 대표 · 화명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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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5-09-09 00:5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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