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종국 논설위원/변호사
<편집자 주> 부산경제신문은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지금까지 고수하여 왔다. 그러나 나쁜 정치가 민생의 뿌리를 뒤흔드는 위기를 겪으면서 정치와 경제가 분리될 수 없다는 냉엄한 현실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제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범위 내에서 정치에 관여하는 것은 경제언론의 숙명임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경제와 정치를 넘어서는 더 큰 안목으로 국가발전을 위한 조언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결심이다. 그 첫 번째로 국가정체성의 확립을 통한 국민통합의 길을 제언한다. 몇 회에 걸쳐 연재한다.
근‧현세 150년 간의 외침, 식민지 지배, 해방, 분단, 전쟁, 독재의 질곡을 겪으면서도 경제건설과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했다고 칭송받던 대한민국의 민낯이 작년 12월 3일의 비상계엄 선포와 그 사태를 둘러싼 국가 사회 전체의 대혼란으로 폭로되어 버렸다. 극심한 이념 갈등과 양극화가 국민들을 심하게 분열시켜 국가사회의 안전을 흔들 지경에 이르러 있음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멀쩡해 보이던 사람이 갑자기 말기암 환자로 판명된 것과 같은 꼴이다. 그 동안 이 나라 국민들에게 자부심을 안겨 주었던 경제건설도 민주화도 허상에 불과하였던가? 이 나라가 과연 이 정도 수준에 불과하였던가? 심한 자괴감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살얼음판을 디디듯 하며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고 새 정부가 들어설 참이지만, 저간에 드러난 깊은 상처는 국민들로 하여금 과연 국가사회의 장래가 방향을 제대로 잡고 순조롭게 안정될 것인지 조마조마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여기에 예측을 불허하는 미국의 ‘트럼프’발 경제파고가 덮쳐서 국가경제를 혼돈으로 몰아넣을 기세다.
이러한 위기 상황은 우리로 하여금 되묻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대한민국은 대체 어떤 나라냐고.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정체성이 무어냐고 묻는 것이다. 마치 어떤 개인이 좌절에 빠졌을 때 ‘나는 누구냐.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냐’고 자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국가의 정체성은 헌법에 형상화되어 있지만, 우리는 지난 사태 때 헌법 해석조차도 정파에 따라서 극심한 분열과 대립을 보이는 것을 지켜보았다. 헌법 전문가들과 법률가들 사이에서도 그러하였다. 사태가 이쯤 되어서는 헌법조차도 큰 위기 앞에서는 국가정체성을 지켜내지 못할 수 있다는 예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우리가 그 동안 믿고 있었던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뿌리가 얕고 피상적이었던 것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통절한 반성 위에서 다시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 근본으로 되돌아가서 다시 처음부터 물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우리는 대체 어떤 나라를 만들고 싶은가? 어떤 나라를 만들어야 할 것인가? 피상적으로가 아니라, 근원적으로 묻고 근원적인 답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국민통합과 국가발전을 이룰 수 있다. 지금부터 대한민국의 제1과제는 국가 정체성의 올바른 정립(확립)이다.
한민족이, 대한민국이 형성되어 내려온 긴 역사의 과정에서 우리의 얼과 혼을 형성해온 것, 우리만이 유전자 속에 지니고 있는 것, 우리가 아니면 전 세계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것, 그것을 되찾아 바로 세워야 한다. 그 정체성을 바탕으로 하여 국가목표를 올바르게 정립해야 한다. 그리고 창조적 발전이 이어져야 한다. 더 머뭇거릴 수 없다. 새로운 국가건설은 그것 없이는 불가능하다. 아무리 경제, 경제 하고 외쳐보아도, 정체성 확립과 국가목표의 올바른 정립, 이를 통한 국민통합 ‧ 사회통합 없이 진정한 발전은 불가능하다. 과거에는 너무 부족한 것이 많다 보니까 뭐든지 걷어잡고 뛰면 어느 정도 이룰 수 있었다. 질적인 것보다는 양적인 성취에 치중해 왔다. 그 성취에 잠시 도취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누구도 우리를 위대한 나라, 훌륭한 나라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이제 우리가 물질적, 유형적으로 성취할 수 있는 것은 거의 한계에 도달했다. 새로운 성취는 정신의 차원이 바뀌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정신의 차원을 바꾸는 일은 자기 정체성을 바로 세우지 않고는 안 되는 일이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인간이 이룰 수 있는 최상의 진리까지 도달하고 이를 구현하였던, 인류 역사상 최고의 위대한 역사와 문화가 있었다. 그 역사와 문화는 전체 우주가 한 생명임을 깨달아 삼라만상을 한달음에 꿰어 낼 줄 알았고, 생명의 본질을 완전하게 파악하여 생명의 가치를 온전히 실현하고 홍익하는 인간들로 이치의 세상을 이루고자 하였으며, 이를 위해 전 인류를 하나의 가족으로 여기고 깨우치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사해동포 ‧ 인류공영의 정신을 발휘하였으며, 그 가르침이 동서남북 사방으로 퍼져 현존하는 인류 문명의 모태가 되었음에 비추어 보면, 이 우주적이고 영원한 생명정신과 그 실천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얼이요 혼이요 정체성(正體性)이라고 할 것이다.
세상에 둘도 없는 이 위대한 역사와 정신, 아름답고 지혜로운 문화를 왜 파묻어 두고 있단 말인가? 어느 나라, 어떤 사람에게서 우리가 이보다 더 훌륭한 것을 배울 수 있겠는가? 이 역사와 문화를 빨리 복원해야 한다. 전 국민에게 다른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가르쳐야 한다. 그래서 얼과 줏대를 분명하게 세우고, 하늘과 땅과 일체의 생명을 두루 꿰어서 통찰하고 내려다보는 지혜로우면서 굳세고 강하고 큰 정신의 기상을 우리 국민성으로 재정립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 그 바탕 위에서 더 훌륭한 정체성을 발전적으로 창조해 나가야 한다. 이런 바탕이 설 때, 비로소 우리는 자신감을 가지고 위대한 나라를 만들 수 있다. 정치도 경제도 교육도 문화예술도 의료도 국제관계도 남북관계도 옹졸하고 조급하고 비굴하고 천박함을 넘어서 뚜벅뚜벅 의연히 나아갈 수 있다. 세계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설 수 있다. 인류의 발전을 이끄는 나라가 될 수 있다. 세계화와 우주화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황종국 논설위원/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