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철훈 교수 칼럼리스트
(홍철훈 교수/칼럼리니스트)
‘야누스(Janus)’는 ‘2개의 얼굴을 가진 천국을 지키는 문지기’로 알려져 있다. 로마 신화에 나온다. 인간이 죽어 천국 문턱에 가면 이생에서의 행실에 따라 그가 천국과 지옥을 가름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선과 악의 두 얼굴을 한 몸에 지닌 이심동체(二心同體)인 셈이다. 사실, 태풍도 그런 양면(兩面)이 있다. 여기서, 먼저 그 발생과정을 간단히 정리해 보자. 어떤 원인으로 남쪽(저위도) 바다에서 갑자기 더워지면 담배 연기처럼 상승기류가 생기고 그 빈자리를 메우려 주변 공기가 모여드는데, 이때 소위 ‘지구자전력(地球自轉力)’(흔히 코리올리 힘이라 함)의 영향을 받아 생기는 소용돌이가 태풍이다.
북반구에서는 반시계방향, 남반구에서는 시계방향으로 돈다. 그 지름이 보통 100km 이내이지만 초대형은 1,500km나 된다. 태풍 중심 주변에서 올라간 더운 공기는 끝내 차가워져 물방울이 되고 이렇게 모인 것이 인공위성 사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흰 달팽이관 구름 띠’가 된다. 흥미로운 건, 태풍 소용돌이는 회전하면서 펌프(pump)처럼 아래층의 차가운 해수와 풍부한 영양염을 표층으로 퍼 올려 상하 해수혼합을 골고루 이루어 생물 번식에 크게 도움을 준다. 게다가 저위도에서 얻은 풍부한 열량(熱量)을 북으로 이동하면서 중위도에 뿌려, 이른바 ‘전(全) 지구적인 열평형(熱平衡)’을 꾀하니 갸륵하기도 하다. 그야말로 야누스의 착한(善) 얼굴이요, 자연(自然)으로서는 크게 고마운 일일 것이다.
반면, 야누스의 못된(惡) 측면은 무시무시하다. 바다를 ‘경쟁이 없는 새로운 시장’으로 활용하자는 「블루오션(Blue Ocean)」의 맥락에서 보면 그 꿈을 다 부수는 것 같다. 지나간 해역마다 어장은 사라지고 선박들은 피항(避港)하고 어쩌다 육지에라도 상륙하면 인명피해는 물론, 경제적 손실도 막대하다. 한 예로, 2003년 9월에 경남 고성군 일대에 상륙하여 한반도 남동부를 관통해 동해로 빠져나간 「태풍 매미」는 실로 역대 최대급 피해 태풍이었다. 사망·실종자 132명, 이재민 6만 1천여 명에, 당시 화폐 기준으로 4조 7천억여 원의 재산 피해를 안겼다. 이런 망나니(?)이기도 하다. 따라서 바다를 인간에게 유익한 경제 공간으로 활용하려면 야누스와 같은「태풍」의 두 얼굴을 잘 파악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태풍의 경로다. 한반도 주변을 지나가는 태풍은 매년 2.5∼3개 정도로 조사되었는데, 흔히 북태평양에 존재하는 북태평양고기압의 중심이 어디에 위치하냐에 영향을 받는다. 본시 이 고기압의 고도와 크기가 방대하여 태풍이 이를 관통하지 못하고 그 가장자리(沿邊)를 따라 북진하는 경향이 강해서다. 따라서 이 고기압의 거동을 살펴 태풍의 진로를 가름하는 것도 유념할만하다. 최근에는 태풍 예측의 정도(精度)를 높이려 인공지능(AI)을 도입하거나, 소위 ‘딥러닝(deep learning) 기법’, 즉 인간 두뇌를 모방한 알고리즘을 사용해 복잡한 기상데이터를 처리하는 기법이 도입되고 있다.
또 태풍으로 발생하는 해수 음향도 주목할 만하다. 소리의 전달속도는 육지에선 1초에 약 340m인데 바닷물 속에서는 그보다 약 4.5배(약 1,500m/초)나 빠르다. 그 덕을 바다생물들이 본다. 적도 근해에서 태풍이 거동해 소용돌이 치면 35분도 채 안 돼 한반도 주변 바다생물들은 태풍이 뜬 줄 알고 피신할 준비를 할 것이다. 이 정도 시간이라면 태풍이 발생한 곳에서 약 3,000km나 소리가 전달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소리는 바다 생물들에게는 긴급대피를 알리는 ‘소방수’인 셈이다. 바다에서의 이런 소리특성을 잘 활용하면 태풍이 내습할 때 경로(經路)예보, 연안 방재(防災)는 물론, 양식 어장의 피해를 한결 줄일 수도 있을 것이다.
부경대학교 해양생산시스템관리학부 명예교수
홍철훈(해양물리학·어장학 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