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권위 있는 경제 주간지인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헤드라인을 보면 최근 세계 경제의 주요 이슈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이번 달 헤드라인은 ‘부족의 경제(shortage economy)’와 ‘에너지 쇼크’가 장식했다. 물건이 동난 가게 진열대를 보여주는 커버 페이지는 선진국 경제 전반에 걸친 급격한 수요 증가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해서 오는 물자 부족 현상을 대변한다. 코로나 시대 선진국의 소비 증가는 유가 인상 및 천연가스 수급 문제로 인한 에너지 쇼크와 더불어 글로벌 경제 전반에 걸쳐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있다.
억눌린 수요가 한꺼번에 몰리는 일시적 현상 정도로 평가되던 물가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단기 이벤트 수준을 넘어 구조라는 틀로 분석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들이다. 미국이 달러를 아무리 풀어도 물가는 요지부동이었다. 지난 수십 년간 달러 패권의 아성 속에서 연준은 위기 때마다 돈 찍는 기계를 돌렸지만 인플레이션은 고개를 쳐들다 이내 아래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디플레의 우려도 있었지만 경제는 골디락스였다. 과열되지도 않고, 침체를 걱정해야할 만큼 냉각되지도 않았다. 물가가 오를 것이라는 부담을 가지지 않고도 실업률은 떨어졌고 소비는 늘었다. 성장률 곡선 또한 우상향을 그렸다.
물가가 오르면 경제에는 어떠한 영향이 있을까. 소비자들은 장바구니 물가가 상승하고 같은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의 양이 줄어들어 상대적 궁핍을 느끼게 된다. 물가를 계산할 때 부동산 가격은 직접적으로 포함되지 않지만 최근 급격히 오른 집값과 전셋값을 고려하면 국민의 체감 물가는 더 높을 수밖에 없다. 기업 측면에서도 늘어나는 생산 비용을 감당해야 하고, 소비자 판매 가격을 그만큼 올리지 못할 경우 수익성이 악화되고, 미래의 가격 불확실성으로 생산이나 사업 계획에 차질이 생기게 된다.
세계의 공장 중국이 글로벌 경제에 편입된 효과도 있었다. 높은 부채비율과 고령화의 인구구조, 소득불평등 등 수요부족에 따른 만성적인 디플레 압력이 양적완화에 따른 인플레 효과를 차단했다는 분석도 있다. 구조적 침체(Secular stagnation)다.
이제는 다르다는 느낌이 여기저기서 감지된다. 먼저 영국 상황을 보자. 영국 최대 항구인 펠릭스토우항에 컨테이너가 쌓여있다. 하역을 하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돌아가는 선박들도 나타났다. 물건을 트럭으로 옮겨 물류창고로 운송할 트럭 운전사가 부족한데 따른 현상이다.
정유소에 기름도 동났다. 영국 물류와 공급체인에서 외국인 노동자의 비중이 높았지만 브렉시트 여파로 이민법이 강화되고 코로나19 제한 등의 영향으로 노동력이 부족하다. 미국 LA항과 롱비치항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반도체 쇼티지도 상황이 심각하다. 마땅한 대책이 없어 보인다. 원자재 가격은 급등하고, 유가와 석탄가격까지 고공행진이다. 친환경의 패러다임 변화 속에 희토류는 국가간 자원갈등의 촉매제가 될 여지도 있다.
비용효율이라는 성장위주의 사고가 먹혀들 때와는 딴판인 상황이다. 비용을 외주화하고 성장에 목메던 과거와는 다른 무엇인가가 다가오는 듯하다. 변화는 시작됐지만 그 그림을 그려낼 만한 소재들은 파편적이다. 지금 목도하는 인플레이션이 단기에 끝날 것 같지도 한다. 백신 보급으로 위드코로나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고, 반세계화와 기후위기는 21세기 인류 앞에 놓인 디폴트 값이 됐다. 수요는 늘어나는데 공급단가는 오른다. 재정을 풀어 만들어 놓은 지금의 회복을 이어갈 정책조합은 약달러와 인플레이션이 나아 보인다. 급격하게 진행되지만 않는다면 정책적으로도 인플레이션이 필요하다.
최근 정부는 무리한 대출 총량 규제나 DSR 규제 등으로 부동산 가격 안정과 가계 부채 감소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하고 있다. 이자율 인상으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가 관리를 위해서도 유류세 인하와 같은 각종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특히 내년 초에 있을 대선 때문에 적극적인 물가 관리 정책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한번 물꼬가 트인 인플레이션은 잡기 어렵다. 코로나는 물러가겠지만 인플레이션이 덮칠 수 있다. 하나의 위기가 가니 다른 위기가 몰려오는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