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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밤에는 꽤 쌀쌀하다. 길거리 벤치에 허리를 접고 누운 노숙인의 허리는 더 구부러진다. 추워서 몸을 오그리지만 그래봐야 더 불편할 뿐, 추위를 면할 수는 없다. 벤치에 두 개씩 가로질러 놓은 나무작대기는 노숙인들이 아예 눕지 못하게 만들어 버렸다.

부산역 부근에 일하는 분식집 아주머니,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돌볼 틈도 없이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분이 노숙인들을 향해 분통을 터뜨리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밥을 못 먹는 사람들에게 밥 한 끼 대접하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은 감사할 줄 모른다. 심지어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도 많다. ’우리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뼈 빠지게 일하는 사람들이다. 새벽부터 밤까지 일해 몇 푼이나 남기겠는가. 그런데 그들은 일을 안 하면서 우리를 이렇게 괴롭히는가’ 하고 말이다.

혹은 부산역광장과 대합실에서, 혹은 남포동 지하상가에서 많은 사람들이 노숙인의 모습을 보고 눈살을 찌푸린다. 많은 노숙인들이 인격이 무너진 모습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도 보이는 노숙인보다 보이지 않는 노숙인들이 훨씬 많다는 것을 아는 시민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인격이 무너진 일부 노숙인보다 인격을 유지하고 체모를 지키고 있는 노숙인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더더욱 많지 않을 것이다.

노동을 통해 자기 먹을 것을 해결하는 노숙인들도 제법 많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도 많지 않을 것이며, 절대 다수의 노숙인들이 일을 하기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얼 마 안 될 것이다. 다만 이들에게 일자리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 뿐....

나는 10년 정도 주위의 의사, 약사들과 노숙인 무료진료소를 운영해왔다. 진료소 재정은 후원금과 시의 일부 재정지원을 통해 해결하고 있고, 수술이나 입원치료가 필요한 경우 부산의료원이나 주위 병의원에 의뢰하여 해결하고 있다.

시의 재정지원을 받고 있지만, 자원봉사의 성격이 강하므로 언제나 재정이 부족하고 어려움이 많다. 노숙인을 진료하자면 노숙인의 처지와 생각을 잘 알아야하므로 여러 가지 조사를 하게 된다. 이결과 노숙인들의 현재 상태는 그들 자신의 잘못보다는 사회구조적인 문제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노숙인중 열에 일곱 정도는 이른바 결손가정 출신이다. 이들은 대개 10대 후반 경부터 노동에 종사하는데 많은 교육을 받지 못했고, 자기 지지기반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주로 막노동에 종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일신상의 문제가 생기면 주위의 도움을 거의 받을 수 없다. 육신이 멀쩡할 때는 그나마 낫다. 행여 공사현장에서 다치게 되면 거의 노숙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가장 많다.

한국의 건설업은 하청의 하청, 이런 방식이 많아서 현장에서 사고가 나면 고용주의 의지와 상관없이 제대로된 치료와 보상이 거의 안 된다. 그러면 이 사람은 결국 막노동을 할 수 있는 노동능력은 상실한 채 여관, 여인숙, 찜질방 등을 거쳐서 거리로 나오는 것이다. 즉, 노숙인이 되는 것이다. 20대 후반 30초반의 나이에 사실상 노동능력을 상실한 채로 말이다. 다른 일을 하고 싶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예 이러한 순서가 오지 않는다.

50대 60대 부산출신 노숙인들 중 과거 종사한 직업을 보면 유독 섬유공장, 신발공장, 선원이 많다. 과거 부산이 명실상부한 제2도시일 때, 부산의 주력산업 노동자들이었던 것이다. 산업구조가 개편되면서 이들은 재교육을 받고 새로운 업종에 종사했으면 좋았으련만 그렇지 못한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98년 IMF위기 때 대량으로 해고되어 노숙하는 분들중에 서울에서 은행지점장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내가 직접 본 분 중에는 대기업에 하청한 회사의 사장도 있었다. 정규직원이 100여 명이나 있었지만 연쇄부도로 망했다고 들었다.

노인이나 여성노숙인들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노인들은 대부분 공적부조를 받아야 할 질병들을 가지고 있다. 가족은 사실상 해체된 지 오래다. 여성노숙인들의 경우 규모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노숙인 전수조사에서 기록되는 여성 노숙인은 전체 규모의 5-10% 정도 되지만 실제는 몇 배가 더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정도다.

몇 년전 우리가 조사한 바로는 부산에서 한해 길거리에서 죽어가는 노숙인이 120내지 130명 정도, 결핵유병율은 일반의 5-10배, 사망률도 2-3배, 근골격계 질환의 유병율은 아예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이다. 거의 모든 노숙인이 근골격계 질환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우리가 보기에 노숙인의 문제는 자신의 원인도 있을 수 있겠지만 대다수는 우리 사회가 경제적으로 성장한 것보다는 훨씬 낮은 수준에 있는 우리 사회의 복지수준에 기인한 것이 많고, 이들에 대한 사회적 대책과 지원도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사회적 지원과 대책이 없이는 노숙인이 양산되는 구조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주위의 노숙인들도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노숙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 굴러 떨어지면 누구라도 인격이 망가질 수 있다는 것, 노숙인들도 일을 해서 제대로 살기를 절실히 바란다는 것을 대다수 국민들이 알아주는 일일 것이다. 그래야 노숙인을 위한 옳은 사회적 대책을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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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0-10-2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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