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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 변호사며칠만 더 지나면 다사다난했던 2019년 한 해도 저물고, 2020년 경자년(庚子年) 새해를 맞이한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면 우리는 반드시 먹는 게 있다. 흔히 ‘떡국’을 떠올리겠지만, 개개인의 식성과 기호에 따라 또는 세시풍속(歲時風俗)을 일일이 다 챙기기 힘든 바쁜 현대인들의 생활 패턴에 따라 떡국은 먹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인들이라면 반드시 먹을 수밖에 없는 것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로 ‘나이’이다. 1월 1일을 기점으로 전 국민이 동시에 1살씩 더 먹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태어나면 곧바로 1살, 그리고 해가 바뀌면 거기에 한 살씩 더해가는 연령 계산 방식인 ‘세는 나이’ 또는 ‘한국식 나이’를 전통적으로 사용했으며, 이 방식이 지금도 일상생활에서 주로 쓰이고 있다. 그러나 ‘민법’에 규정된 바와 같이 법률관계에서는 출생일을 기점으로 하여 나이를 계산하는 ‘만 나이’가 기본이며, ‘병역법’, ‘청소년 보호법’ 등 일부 법률에서는 현재 연도에서 출생 연도를 뺀 ‘연 나이’가 사용되고 있다. 게다가 비록 1월에서 12월생까지 같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2009년부터는 제도적으로 사라지게 되었으나, 그 이전에 전년도 3월에서 12월생들과 같은 학년으로 입학한 1월․2월 출생자들은 소위 ‘빠른 연생’이라는 또 하나의 ‘사회적 나이’까지 가지고 있다. 그 결과 한국에서 통용되는 나이는 무려 4가지나 존재한다.


이러한 우리나라의 연령 계산 방식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독특하고 다양한데, 그 때문에 혼선이 가중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1990년 2월생의 경우, 2020년 1월 기준으로 ‘세는 나이’는 31세, ‘만 나이’는 29세, ‘연 나이’는 30세, 거기다 ‘빠른 연생’으로서 ‘사회적 나이’는 32세이다. 이는 곧, 한 사람에게 나이가 4개씩이나 부여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특히 ‘세는 나이’로 계산할 때 12월 31일 출생하는 아이는 단 하루만 지나도 ‘2살’이 되는데, 그 불합리성에 대해서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조차도 ‘코리안 에이지(Korean Age)’라고 하여 자주 지적되는 내용이다.


이는 결코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다. 일상생활과 법률관계 사이에 이처럼 연령 계산 방식이 상이한 것은 불필요한 행정비용을 수반할 뿐만 아니라, 서열문화의 조장에 따른 사회적 갈등과 혼란도 야기할 수 있다. 또한 연말에 출산을 기피하는 부작용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글로벌 시대인 오늘날 이러한 방식은 국제적 기준에도 부합하지 않으며, 전통적으로 ‘세는 나이’를 사용하던 중국, 일본, 베트남 등 동아시아 국가들마저도 이미 ‘만 나이’로 바꾼 상태이다. 북한의 경우에도 현재 ‘만 나이’를 사용한다.


그리하여 공문서에 ‘만 나이’ 기재를 의무화하는 한편, 일상생활에서도 ‘만 나이’를 사용하도록 권장하는 ‘연령 계산 및 표시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올해 1월 황주홍 의원의 대표발의로 국회에 제출된 바 있다. 즉, 연령은 출생한 날로부터 계산하고 연령을 표시할 때에는 출생일로부터 계산한 연수로 표시하며, 만일 1년에 이르지 않은 잔여일이 있다면 개월 수를 함께 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거의 1년이 다 되어가도록 이 법안의 통과 여부는 요원한 상태이다. 더욱이 현재 공수처법․선거법 처리 문제로 인해 정국이 경색되고 국회 내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을 뿐만 아니라, 내년 초부터는 급속히 총선 국면으로 전환되어 국회가 사실상의 휴지기(休止期)에 진입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 법안은 20대 국회의 임기만료와 동시에 자동폐기되는 수순을 거치리라 예상한다.


그렇지만 매년 새해가 되면 연례행사처럼 반복되는 연령 계산 방식에 관한 개선요구가 이로써 끝난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지금부터라도 각계각층과 유관 기관들의 광범위한 논의가 진행되어야 한다. 한국식 나이가 아무리 우리의 전통과 관습의 일부분이라 하더라도, 변화된 시대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오히려 불필요한 행정적․사회적 비용을 지속적으로 발생시킨다면, 굳이 이를 무조건적으로 지켜야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제는 ‘만 나이’로의 일원화를 위한 컨센서스(consensus)를 모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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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12-26 11:5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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