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기사수정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옛날 어느 마을에 돼지처럼 욕심이 많은 구두쇠 양반이 살고 있었다. 원래 공짜라면 양잿물도 많은 것으로 골라 먹으려 하고 감기조차 남들이 가져갈까봐 조심하는 위인인데다가 성질까지 어찌나 고약했던지 장사꾼도 그 집앞을 지나기조차 꺼려했다. 


하루는 솜씨 좋기로 소문난 한 목수 총각이 읍에 장보러 가다가 양반네 집 앞을 지나게 되었다. 대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오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던 양반은 이 목수 총각을 보자 불러 세우며 부탁하는 것이었다.


“이보게 목수 총각! 마치 기다리던 참이네. 다음번 산에서 내려올 때 나막신 한 켤레를 만들어 주게, 나는 키는 작아도 발은 큰 편이니 좀 여유있게 만들게, 값은 후하게 주겠네.” 총각은 읍에서 돌아오자 산에 올라가 고운 참나무를 골라 나막신 한 켤레를 곱게 파서 동백기름을 발라 윤기나게 해 두었다가 며칠 후 양반에게 갔다 주었다. 


나막신을 받아 신은 양반은 만든 솜씨가 이만저만이 아니어서 값이 꽤 될 것 같아 이리저리 궁리하다가 물었다. “그래, 값은 얼마나 받겠나?” “거저 해 드렸으면 좋겠으나 이 일로 먹고 사는 처지이니 알아서 품값이나 주시지요.” “음, 서로 모르는 처지도 아니고 나무 그릇 값은 물건 크기만큼 주는 법이니 나막신에 담길 만큼 좁쌀을 주겠네.” 총각은 괘심한 생각이 들었지만 권세 있는 양반이라 거역도 못하고 나막신에 담아 주는 좁쌀을 가지고 맥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후, 목수 총각이 또 읍에 장보러 가다가 양반네 집 앞을 지나는데 양반이 그를 보고 또 불러 세웠다. “이봐 목수 총각, 잘 있었나, 소 구유가 있어야 하겠는데 다음 번에 장보러 올 때 큼직하게 하나 만들어 오게, 내가 언제 공짜일을 시키던가? 꼭 부탁하네.” “그렇게 합죠. 그런데 얼마나 크게 만들까요?” “두 말하면 잔소리지, 크면 클수록 좋지.” 총각은 그 길로 곧장 산으로 올라갔다. 


이번엔 고약한 구두쇠 양반을 골려 주려고 마음 먹은 총각은 두 아름 굵기에 길이가 삼십자나 되는 나무를 베어다가 구유를 만들어 가지고 며칠후 달구지에 실고 구두쇠 양반을 찾았다. 구유를 본 양반은 호뭇해서 말했다. “그 구유가 좀 짧기는 하네만 쓸만하네, 값은 얼마나 받겠나?” “예, 서로 모르는 처지도 아니고한데 어찌 많이 받겠습니까, 그저 저 구유에 좁쌀이나 가득 채워 주시지요.” “에끼 무식한 녀석! 산에 혼해 빠진 나무로 대강 만든 구유가 어째서 그렇게 비싸단 말이냐?” 그러자 총각은 양반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아니 값은 어른께서 일전에 결정한 것이 아니옵니까? 예로부터 나무 그릇 값은 물건 크기만큼 주는 것이라고요!” 제딴에는 잔꾀를 써서 총각의 품값을 등쳐먹으려 한 것인데 그만 제가 정한 품값이라 하는 수 없이 그 큰 구유에 좁쌀을 채워 줄 수 밖에 없었다. 


이 이야기에서 구두쇠 양반은 어찌하여 목수 총각의 논리를 받아 들이게 되었을까? 그것은 그가 바로 동일률을 어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동일률이란 한 사고 과정 중에서 사고는 반드시 「그것은 무엇이다」라고 확정적으로 규정해야 하며(확정성), 사고 내용 자체의 동일성을 가져야 한다는 사고(思考)의 법칙이다. 


다시 말하면 동일한 사고 과정에서 개념 또는 판단은 반드시 동일성을 유지해야 하며, 제멋대로 바꿔서는 안되는 것이다. 위의 이야기에서 나막신 값을 치를 때와 소 구유 값을 치를 때가 시간상으로는 다르지만 양반이 주장한 사유(思惟) 과정은 동일한 것이다. 「그러므로 나무 그릇 값은 물건 크기 만큼이다」라는 판단은 반드시 동일성을 유지해야 한다. 


목수 총각은 바로 이 점을 포착하고 동일률을 위반한 동일률은 어떤 사물이나 현상이 영원히 불변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고정되어 있다는 것의 반영이기 때문에 동일률의 동일은 절대적인 동일이 아니라 상대적인 동일이다. 그러므로 동일률은 객관 세계의 부단한 운동 변화의 발전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동일률은 다만 어떤 대상을 논의할 때 동일한 시간, 동일한 사고 과정 중에서 동일한 개념에 동일한 내용을 부여해야 한다고 요구할 뿐이다. 동일률은 변증법과 서로 모순되지도 않거니와 서로 배제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동일률은 궤변을 논박하는데 있어서 강력한 수단이다.


0
기사수정
  • 기사등록 2019-10-22 09:34:51
기자프로필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오늘의 주요뉴스더보기
부산은행
부산광역시 상수도사업본부
동양야금공업
원음방송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