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자 약 3,000만 명, 사이버머니 ‘도토리’로만 한 해 매출 1,000억 원 돌파. 대표적인 국내 1세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싸이월드(Cyworld)’를 상징하던 영광의 숫자들이다. 1999년 처음으로 서비스가 개설된 이래, 2000년대 중후반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끈 싸이월드는 단순한 인터넷 사이트의 일종이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사회 현상에 가까웠다. ‘미니홈피’를 아기자기하게 단장하려고 밤늦게까지 고심했고, 최신 배경음악(BGM)을 구입하고자 ‘도토리’를 결제했으며, 학교에서, 직장에서, 모임에서 새로 만난 친구, 동료, 지인들에게 미니홈피 주소를 물어 보고 ‘일촌’을 신청하는 것은 마치 통과의례와 같았다. 더욱이 서로의 방명록을 통해 시시콜콜한 일상의 대화도 거리낌없이 주고받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새벽녘 한창 유행하던 감성 발라드에 취해 옛 사랑을 추억하며 남몰래 눈물을 흘리던 그 시점에도, 우리의 곁에 싸이월드 BGM이 함께 하고 있었다. 물론, 카카오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의 다른 서비스들도 오늘날 인터넷 세계에서 꽤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 당시의 싸이월드는 분명 없어서는 안 될 우리의 진정한 ‘일촌’이었다.
싸이월드가 탄생한 지 20년째인 올해. 10월 들어 싸이월드의 공식 홈페이지는 정상적인 접속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이다. 또한 11월 12일을 기점으로 도메인 주소의 사용기한 만료도 예정되어 있다. 그 날을 넘긴다면 약 3,000만 명에 달하는 이용자들의 소중한 기억들이 한 순간에 공중분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까지 나왔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지난 12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싸이월드의 서버 관리 업체들로부터 이용자들의 게시물이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다는 확인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으로부터 50억 원을 투자받고 사업 다각화를 추진하면서 재도약을 모색하던 싸이월드에 대해, 더 이상의 미래를 기대하는 것조차 이제는 헛된 희망처럼 보인다.
도대체 언제,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확실한 점은 싸이월드가 ‘혁신’을 잃었다는 것이다. 시시각각 급변하는 IT 시장의 한복판에서 글로벌 SNS 기업들과 무한경쟁에 임하는 상황이었음에도, 싸이월드는 변화보다는 안주를 선택했다. SK에 인수된 이후, 잦은 경영진 교체와 대기업 특유의 경직적인 의사결정 구조는 싸이월드의 경쟁력을 취약하게 만들었다. 또한 모바일 환경에 대한 새로운 수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고, 기존 유료 콘텐츠에 지나치게 의존했다. 기술적 혁신은 오래도록 답보 상태였다. 슘페터가 주창한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는 도무지 찾아보기 힘들었다. 혁신을 상실하고 비즈니스 생태계에 적응하지 못한 싸이월드는 정상에 오른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그저 그런 IT 기업으로 순식간에 전락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누적된 결과가 바로 이 시점에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몰락한 싸이월드의 모습이다.
그리 머지않은 시점에 싸이월드의 최종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시장경제체제에서 경쟁에 도태된 기업이 퇴출되는 현상은 필연적인 일이다. 20년이란 시간동안 우리에게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들을 선사해 준 고마운 존재와도 이제 헤어짐을 준비할 때가 되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임금체불, 공지 없는 서비스 폐쇄 수순 등의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느껴지는 서글픔은 어쩔 수 없다. 결국 오랜 친구와 헤어져야만 한다면, 마지막 모습만큼은 조금 더 아름다웠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