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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군
문화시설사업소
이노태 소장
내가 상림의 생태계가 건강하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 증거들이 많이 있다. 우선 은쟁반에 옥구슬 구르듯 아름다운 소리로 노래하는 호반새와 꾀꼬리를 보자. 꾀꼬리야 어릴 적부터 많이 봐왔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지만,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또 다른 아름다운 소리의 주인공이 호반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직박구리, 참새, 딱따구리 등 많은 새들이 노래하고 있지만, 이 두 마리의 아름다운 소리는 신록으로 빛나는 나뭇잎 하나하나에 제법 오랫동안 잔향으로 머문다. 그래서 숲속에서 노래하는 새들의 소리만 들어도 걸터앉은 나무의 모양과 숲의 깊이까지도 상상해 보게 된다. 발성연습이 제대로 안된 듯한 오리소리를 내는 원앙은, 조용하게 먹이를 찾거나 멱을 감거나 논두렁에 모여앉아 몸을 말리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입을 꼭 다물고 있는데도 끊임없이 서로가 이야기를 주고받는 듯한 착각이 드는데, 그들만의 미세한 날개 짓이나 몸동작 하나만으로 이심전심 통하는가 보다. 그러다 가끔은 화난 듯 혹은 화들짝 뭔가 생각난 듯, 발뒤꿈치가지 들고 양 날개를 퍼득이며 꽥꽥거리는 모습이 볼수록 귀여운 녀석들이다.


상림에는 잿빛 두루미나 흰색 두루미들이 늘씬한 몸매로 우아하게 먹이를 찾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 연밭에는 달팽이와 올챙이 미꾸라지 등 먹잇감이 풍부한지 녀석들이 지정 식사장소로 이용하는 듯하다. 두루미는 훤칠한 키와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며 서두르지 않고 이곳저곳을 다닌다. 적절한 곳에 자리를 잡고 먹이가 경계심을 풀 때 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다가, 눈 깜작 할 사이에 발버둥치는 먹이를 들어 올리며 짜릿한 손맛, 아니 부리맛(?)을 즐긴다. 얼마나 빠른지 순식간에 일어나기 때문에 잠깐 방심했다간 이 찰나를 놓치기 십상이다. 


여기에는 잡으려는 자와 잡히지 않으려는 자의 생명을 건 팽팽한 줄다리기가 있다. 


잠깐 조선 영조 때 문인 중 청장관(靑莊館) 이덕무 선생 이야기를 빌려오자. 이덕무 선생은 문장가로 이름을 날렸는데, 호를 청장관으로 사용했다. 해오라기와 청장관은 황새목 왜가리 과에 속하는 사촌간이라고 한다. 해오라기는 밤새도록 먹이를 찾아 강과 저수지를 여기저기 찾아다니면서 사냥을 하다 보니, 온 몸이 물에 젖거나 진흙을 잔뜩 묻힌다고 하는데, 반면 청장관은 먹이가 지나다닐 법한 골목 한 지점을 골라잡은 다음,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경계심을 푼 먹이가 앞을 지나갈 때 잽싸게 낚아챈다고 한다. 권세욕을 버리고 학문에 정진하고자 했던, 그래서 청장관을 닮고자 했던 이덕무선생의 마음을 엿 볼 수 있다. 


직박구리는 검은빛이 많은 깃털을 하고 있어, 목소리는 고사하고 외모도 호반새나 꾀꼬리와는 비교가 안 된다. 하지만 녀석에게도 훌륭한 장점이 있다. 생김새와는 달리 빠르게 날아다니는 벌레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순발력은 인정해야 한다. 딱따구리는 투시경이라도 있는지 나무껍질 속에 숨어있는 먹이를 잘도 찾아낸다. 청진기로 아픈 곳을 찾아내는 의사처럼 톡톡 나무둥치를 두들겨 보면 먹이가 있고 없는 것을 귀신같이 알아낸다. 상림을 대표할 수 있는 동물 중 다람쥐는 지천으로 떨어진 도토리나 나무열매를 주워 먹는데, 겨울에 먹을 양식까지 준비하는 부지런함과 민첩함 그리고 귀여운 생김새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한편으로는, 주워 모은 도토리를 어디다 묻어 두었는지 찾아내지를 못해 식구모두 겨우내 굶주렸던 경험을 다람쥐 가족들은 한두 번은 가지고 있을 것 같다. 생사를 건 다툼에서 벗어난 도토리들이 이듬해 일제히 싹을 틔워 올리는 모습을 보면, 지난 가을 얼마나 다람쥐들이 부지런했던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나무와 풀들은 어떤가, 겨울이 채 가시기도 전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뚫고 들어온 햇빛 한 조각으로도 싹을 피워 올린 복수초, 현호색 등 지피식물들에게서는 처절한 종족보호본능의 몸부림을 발견한다. 온기가 나날이 바뀌어 갈 때마다 실낱같은 햇빛과 틈새의 바람만으로도, 순식간에 충분히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을 피우고 열매 맺는 짧은 생을 쉼 없이 키워낸다. 숲을 지배하고 있는 듯한 참나무, 느티나무, 서어나무 등 키큰 나무들은 가지 끝이 대부분 숲의 가장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햇빛과 바람을 독점하면서 경쟁자들의 추격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연밭이 있는 산책로 부근의 나무들은 온통 비어있는 공간으로 마치 까치발을 하듯 몸을 솟구쳐 올리고, 팔을 한껏 멀리 뻗어 산책로에는 나무 터널이 만들어 진다. 덕분에 비가 오는 날이면 물 먹은 가지가 연잎에 닿을 정도로 휘어지면서, 나무들은 뿌리뿐만 아니라 나뭇가지 끄트머리도 지상의 생명체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터득한 듯하다. 


장마가 시작되었다. 가끔 젖은 몸을 말리려고 산책로까지 나타난 화사(花蛇·꽃뱀)는 사람을 놀라게 한다. 숲의 생태계에서는 제법 상위그룹에 있어 겁이 없어 보이지만, 꼬리야 날 살려라 허둥지둥 도망치는 모습을 보면, 자칭 지구상 생태계의 지존, 사람을 보고 녀석들도 놀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시기 영양분 가득한 빗물을 머금은 숲속은 지극히 평온해 보이지만 부풀어 터질 만큼 에너지가 충만해 있기 마련이다. 그 속에서 수많은 생명체들은 저마다의 종족 보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만의 규칙을 통해 꼭 필요한 만큼의 개체수를 스스로 유지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가 상림에서 만나는 어떤 것도 불필요하거나 우연인 것은 없다. 숲속의 질서는 사람의 방해만 없다면 더욱 건강하고 구성원들은 번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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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7-10 08:3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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