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민희 기자 기자
강석웅 대동병원 정형외과 과장. |
“의료혜택을 받을 수 없는 미등록 외국인노동자(불법체류자)들을 진료하면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의료안전망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알게 됐어요.”
강석웅(40세) 대동병원 정형외과 과장은 14년차 의사다. 그는 부산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 후 인턴과정을 거쳐 현재는 대동병원 정형외과 전문의(견주관절[어깨] 및 외상)로서 환자들을 진료하고 있다.
강 과장은 특히 지난 2008년부터 10년 동안 매주 일요일이면 녹산 외국인노동자 진료소를 열고 무료 진료를 본다. 녹산공단은 부산에서 외국인노동자가 가장 많이 일하는 곳으로, 강 과장은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불법체류자들을 무료 진료하고, 수술이 필요할 경우 병원을 연결해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
녹산 외국인노동자 진료소는 부산대 의대 출신 선후배 의사들과 민주노총 서부산 노동상담소, 녹산 외국인선교원이 의기투합해 설립됐다. 강 과장을 비롯한 12명이 의료봉사에 참여하고 있으며, 40여명의 의사들이 후원하고 있다. 민주노총 서부산 노동상담소는 외국인노동자들에게 노동법 관련 상담을, 선교원은 무료 한글교육을 진행한다.
강 과장은 대학시절 본과 학생회장 등 여러 학생회 활동을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대학졸업 후에는 부산대 의대졸업생 모임인 ‘아미골’ 멤버로 친목을 도모하다가 재능기부 차원에서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해보자는 의견이 모아져 의료봉사활동을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게 됐다.
“이주노동자들을 진료하면서 의료봉사만으로는 한계를 느꼈어요. 1차로 통합진료를 보지만 검사(CT, MRI 등)나 수술이 필요한 경우 병원으로 넘겨줘야 하는데 불법체류자다 보니 무료수술을 해주는 병원을 찾기 힘들었죠. 다행히 대동병원에서 수술지원을 해줘 외국인노동자 치료에 많은 도움이 됐어요.”
치료했던 외국인노동자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찾아와서 인사를 건넬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는 강 과장은 4년 전 만났던 외국인노동자 사연을 소개했다.
불법체류자였던 30대 베트남 국적의 A씨는 다리에 종양이 생겨 고통이 심했지만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했다. 이 사연을 알게 된 강 과장은 대동병원의 협조를 얻어 전액 무료로 수술을 해줬다.
그는 “외국인노동자들 중에는 일하다가 다쳐도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회사에서 산재를 해주지 않아 치료시기를 놓치는 사례가 부지기수”라며 “최근 만난 몽골 국적의 외국인노동자 B씨(30대)도 산재 인정이 안돼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B씨는 지난해 겨울 일하다가 무릎을 다쳐 전방십자인대파열로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회사에선 B씨가 병원치료를 받는 것을 꺼려했고, 산재처리도 해주지 않았다.
초기 대응 미비(진료기록 부실)로 결국 산재인정을 받지 못해 찾아가는 병원마다 치료를 거부했다. 이 사실을 안 강 과장이 B씨를 데리고 부산시의료원을 찾아가 상황을 설명해 어렵사리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강 과장은 “사업장에서 다쳤을 때 치료시기를 놓치면 급성인지 만성인지 판단하기 어려워 산재인정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며 “B씨의 산재문제와 관련해 민주노총과 함께 근로복지공단에 이의신청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 과장은 외국인노동자들에게 무료수술 등과 같은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대동병원에서 국제의료팀장도 겸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부산시와 대동병원 합작으로 생활이 어려운 몽골인에 대한 무료수술을 시행했으며, 올해 7월에도 몽골 의료봉사를 다녀올 계획이다.
강석웅 과장이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
현행 의료보험 체계는 일반인(내국인)은 100% 중 20~30%만 부담하면 되지만, 외국인(이주노동자·이주민 등)의 경우 2배인 200%를 부담하는 역차별을 받고 있다.
이렇듯 불합리한 보험체계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 2010년부터 ‘소외계층 의료서비스사업’이 시행됐다. 외국인노동자나 노숙자 등 의료소외 계층이 수술을 받을 경우 보험수가 50%만 부담토록 한 것이다. 하지만 외래검사는 보험혜택에서 제외된다.
현재 부산에서 ‘소외계층 의료서비스사업’을 시행중인 곳은 부산대병원과 좋은삼선병원, 부산광역시의료원, 중소병원(개인병원) 등 총 4곳이다. 대동병원도 지난해 ‘소외계층 의료서비스사업’ 참여를 신청했지만 지난 3월 부산시는 ‘참여보류’를 통보했다.
지난해 미수가 됐던 병원진료비를 갚고 나면 신규병원의 사업비 집행이 어려우니 10월까지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공공의료 차원에서 소외계층의 검사 및 수술비를 지원해 왔던 대동병원은 부산시의 ‘참여보류’로 인해 올해 소외계층 공공의료 사업비용을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강 과장은 “부산시가 사업선정과 관련없는 예산부족을 이유로 대동병원이 보건복지부의 사업선정 심사를 받을 수 없게 만든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뜻이 맞는 의사 선후배들과 함께 ‘공공병원’을 만드는 게 꿈이다. 하지만 현행 의료보험체계에선 공공병원이 적자를 면하기 어려운 구조여서 꿈에 다가서는 게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강 과장은 “먹고사는 문제와 교육, 의료 3가지는 기본적으로 나라가 책임져야할 사안”이라며 “돈이 없어서 치료를 받지 못해 죽음으로 내몰리는 비극적인 일이 더는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잘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