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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바라밀선원 <2016 새해맞이 인등법회(引燈法會)>열려.... - 조계종고시위원장 통도사 반야암(般若庵) <요산(樂山) 지안(志安)큰스님>초청, 불교(佛敎)를 <자기화(自己化)>, <생활화(生活化)>, <지성화(知性化)> 하자
  • 기사등록 2016-01-06 21: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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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래(本來) 이 땅에 온 것은/ 법(法)을 전해 어리석은 이를 깨우치려는 것인데/ 한 송이의 꽃에서 다섯 꽃잎이 나니/ 열매는 자연히 맺어지리라.>_초조(初祖) ‘달마’가 중국에서 2조(二祖) ‘혜가’에게 내린 전법송(傳法頌)

 

대한불교조계종(大韓佛敎曹溪宗) 불보사찰(佛寶寺刹) 통도사(通度寺) 포교원(布敎院) <김해바라밀선원(주지(住持) 수담 인해(人海)스님)>에서는 2016년 병신년(丙申年1.1) 새해를 맞아 오전 10시, 통도사 반야암(般若庵) 주지, 조계종고시위원장 요산 지안(樂山 志安) 큰스님을 모시고 뜻 깊은 <새해맞이 인등법회(引燈法會)>를 열었다.

 

이날 성화상 거사님의 진행으로 <거룩한 부처님에 귀의합니다.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부처님전에 <삼귀의례> 음성공양을 올렸다.

 

이어 <“내 이제 두 손모아 청하옵나니/ 시방세계 부처님 우주 대광명/ 두 눈 어둔 이 내 몸 굽어 살피사/ 위없는 대법문을 널리 여소서/ 허공계와 중생계가 다할지라도/ 오늘 배운 이 서원은 끝없사오니> 찬불가 <보현행원>을 음성공양을 비롯해 <“덕 높으신 스승님 사자좌에 오르사 감로법을 주소서/ 옛인연을 이어서 새인연을 맺도록 대자비를 베푸사 법을 설하옵소서”> 큰스님께 법문을 청하는 <청법가>를 음성공양 한 후, 조실(祖室) 큰스님께 3배(三拜)의 예(禮)를 드렸다.

잠시 입정(入靜)이 있은 후, 큰스님께서는 “2016년 새해 첫날 새해맞이 법회(法會)를 동행(同行)하면서 오늘 법회(法會)에 나오신 신도(信徒)님 모두 새해 발원(發願)을 하는 자리이다. 해가 처음 떠서 산꼭대기에 높은 곳을 먼저 비추는 것 같이 출발이 좋은 사람이 항상 성취를 잘한다. 육상경기를 할 때도 대부분 스타트가 좋아야 한다. 그래서 바라밀선원에서 2016년 1월1일 날 이렇게 <화엄신중(華嚴神衆)>도 정근(定根)하면서 기도(祈禱)를 모시니, 이 인연(因緣)이 우리 개개인 올해의 대운(大運)을 이룰 그런 인연(因緣)이라 생각하면 좋겠다.

 

사실 불자(佛者)들이 나름대로 절에 다니면서 기도(祈禱)도하고 법회(法會)에도 참석하면서 자기 나름대로 신행 생활(信行生活)을 해 나가고 있지만 그러나 그런 정도로서 우리가 불교의 수행이 깊어진다고 볼 수 없는 경우도 있고, 또 그런 정도의 수행(修行)으로서 저 사람이 정말 부처님의 가피(加被)를 입을 정도의 그런 신심이 갖추어졌다 이렇게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할 수 있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래서 사람은 수시로 자기 근기(根氣)에 맞춰서 마음안에 신심이 꽉 일어날 수 있는 그런 계기를 일상생활 속에서 중간중간 만들어 가야한다. 오늘 이 법회가 그런 계기를 만드는 일이라 볼 수 있다. 우리는 누구나 해가 바뀌면 새롭게 잘해 보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진다.

 

보조국사지눌(普照國師知訥1158~1210)의 법맥(法脈)을 계승해 고려선가(高麗禪家)의 위치를 굳건히 다진 ‘전남 월출산 월남사’를 창건(創建)한, 조계산(曺溪山) 수선사(修禪寺) 2대 법주(法主) <고려시대(高麗時代) 최초(最初)의 승려시인(僧侶詩人) 진각국사(眞覺國師1178~1234) 혜심(慧諶 1178~1234)스님>께서 음력 정월 초하루(1월1일) 구정(舊正)날, 시(詩)를 한편 지어서 소회(所懷)를 밝히고 발원(發願)을 하는 그런 내용이 전(傳)하고 있어 소개한다. 

<新年佛法爲君宣(신년불법위군선) 새해의 불법을 그대위해 설하노니/ 대지풍류기호연(大地風流氣浩然) 대지의 풍류 그 호연한 기운으로/ 宿障舊殃湯沃雪(숙장구앙 탕옥설)숙세의 업장 눈 같이 녹이고/ 신광편조일승천(新光遍照日昇天) 마음의 빛 두루 비쳐 해가 솟아라>

 

<온 우리 사는 주위환경, 대지(大地)가 풍유(豊裕)가 넘친다는 것은 사람사는 이 공간(空間)이 활기(活氣)가 있고 활동적(活動的)인 모습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개인(個人)은 전부 큰 기상(氣像) 즉 호연지기(浩然之氣.(장자.莊子에서 유래(由來)를 가지고 사람생각을 툭 트이게, 숙장숙세(宿障宿歲)의 업장(業障) 모든 재앙(災殃)을 ‘탕옥설(湯沃雪)’, 눈이 녹 듯이 다 녹여, 과거숙세(過去宿歲)로부터 쌓아온 업장(業障)을 소멸(消滅)한다. 내 마음에서 나오는 빛을 신광(新光)이라 하는데, 신령(神靈)스러운 빛, 신광(新光)이 빠짐없이 두루 비추어 해가 하늘에 뜬 것 처럼 밝은 세상(世上)이 되어서 살자>라며 <신년(新年) 발원(發願)>을 한 <진각국사(眞覺國師)스님의 ‘정단(政旦)’ 시(詩)>가 해가 바뀔 때 마다 고려시대(高麗時代)부터 스님들이 읽어 왔다.

 

<선종(禪宗)>의 제1서라고 일컬어지는 <벽암록(碧巖錄)>과 당나라 중기 이후에 처음으로 교계(교계)의 표면으로 나타난 <능엄경(?嚴經)>은 애독됨.... <벽암(碧巖)>은 <원오선사(圓悟禪師) 극근(克根)>에게 칙명(勅命)으로 수여(授與)된 호(號)이다. <벽암록(碧巖錄)>을 <벽암집(碧巖集)> 또는 <불과원오선사벽암록(佛果圓悟禪師碧巖錄)>, <원오노인벽암록(圓悟老人碧巖錄)>이라한다. <중국 선종 5가> 중 <운문종(雲門宗)>의 제4조인 <설두 중현(雪竇 重顯 980~1052)>가 정리(整理)하고 저술(著述)한 것에 <임제종(臨濟宗) 11조 원오선사(圓悟禪師)>가 부연(敷衍), 그의 제자(弟子)들이 편집(編輯) 간행(刊行)한 것이다.

<설두(雪竇)>스님은 <경덕전등록(京德傳燈錄)>에 실린 1,700개의 공안(公案)중에서 학인(學人)들의 선(禪)공부에 참고할 만한 100개를 선별(選別)해, <대혜(大慧) 종지(宗指)>를 들추어 운문(雲門)에 송고(頌古) 했다. <송(宋)나라 학자(學者)들 중에 학문(學問)과 실천(實踐)의 방법(方法)으로서 참선(參禪)을 익힌 이들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高麗時代)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대혜(大慧)스님의 간화선(看話禪)>을 받아들였다.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을 저술(著述)해 널리 폈다. 이후 <선시(禪詩)>를 많이 남긴 제자(弟子) <진각국사(眞覺國師) 무의자 혜심(無衣子 慧諶1178~1234)스님> 등에 의해 계승발전(繼承發展) 되면서 우리나라 <선수행(禪修行)의 정통적(正統的)인 방법(方法)>으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 인도불교(印度佛敎)가 원류(原流)로서 한국불교(韓國佛敎)의 뿌리를 점한 것이라면 중국불교(中國佛敎)는 각 시대마다 한국불교(韓國佛敎)가 새로운 옷을 입게하는 데 큰 영향(影響)을 미쳤다. 고려말(高麗末)까지 중국불교(中國佛敎)의 큰 특색(特色)은 우리나라에 수용(受容), 변형(變形)되어 새로운 물결을 조성(造成)했던 것이다.

 

우리가 새해를 맞아서 불자(佛者)로서의 새로운 각오를 해야한다. 물론 불자(佛者)로서 사는 것이 가장 내 자신의 인생을 잘 사는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불자(佛者)로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해야 한다. 사람은 순간순간 새롭게 다시 태어난다. 작년까지의 나는 없어진 것이다. 금년 2016년1.1부터 나는 다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우리는 시간이 1초라도 지나면 그 지난 시간을 통해서 내 자신이 새롭게 태어난다. 해가 바뀐다는 것이 시간이 흘렀다, 물리적(物理的)으로 계산하는 그런 진행이 아니고 사람의 마음이 새로워지는 것을 뜻한다. 새로운 각오(覺悟)와 새로운 뜻을 다시 키워야 한다. 

<첫째> 불교(佛敎)를 내 것으로 만들어야한다. 우리가 불교(佛敎)를 믿는다 하면서도 어느 절에 다니고 매달 재일을 지키거나 절에 법회에 참석하고 행사에 참석하고 있지만 아직도 불교(佛敎)가 내 것이 아닌 사람들이 많다. 불교(佛敎)가 남의 것이다. 우리가 시장에 가면 파는 많은 물건들이 있다. 그 물건들은 내 것이 아니다. 돈을 주고 골라 싸면 내 것이 된다. 또한 가게에 파는 물건들도 내 것이 아니다. 남이 파는 물건이다. 보고만 다녀봐야 내 것이 아니다.

 

절에 자주간다 해서 불교(佛敎)가 내 것이 되는 것이 아니다. 백화점에 진열된 물건들이 백화점 자주 다닌다고 해서 내 것이 아니다. 물건을 하나 싸면 그것이 내 물건이 되는 것 처럼, 부처님 법(法)을 내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확실하게 내 불교(佛敎)가 내 마음속에 들어와 있어야 한다. 이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불교(佛敎)의 자기화(自己化)>이다.

 


우리나라 종교(宗敎)를 기독교, 천주교, 불교를 세가지 종교를 대표적이라 한다. 이 중에서 불교(佛敎)를 믿는 신도(信徒)들이 불교(佛敎)를 자기화(自己化) 시켜 진행하는 것이 가장 낮다. 기독교인 천주교인 보다도 못하다. 이건 객관적으로 그냥 나타나는 평가 선에서 하는 말이다. 기독교인들은 일요일날 장사하는 사람들 장사 안한다. 또한 기독교인들은 수요일 예배시간도 철저히 지킨다. 이처럼 자기신앙(自己信仰) 자기믿음에 철저하다.

 

그래서 이 불교(佛敎)도 내가 불교(佛敎)를 할 때 ‘내 불교(佛敎)다’라는 철저한 각오를 다져야지, 외부에 보이는 경치를 보듯이 대해서는 안된다. 불교(佛敎)를 자기화(自己化)하기 위해서는 내 마음속에 신심(信心)이 항상 일어나 있어야 한다. 신심(信心)이 일어나게 하는 방법은 기도(祈禱)이다. 특정한 불보살(佛菩薩)을 생각하면서 기도할 때는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관음기도(觀音祈禱), 지장기도(地藏祈禱), 신중기도(神衆祈禱)도 참 좋다. 신중(神衆)이 실제 가깝게 우리 생활속에 영향을 끼친다. 

신라시대(新羅時代) 원효(元曉)스님, 의상(義湘)스님은 한국불교사(韓國佛敎史)에서 가장 역사적(歷史的)으로 유명(有名)한 스님이다. 의상(義湘)스님은 중국에 가서 ‘지엄스님문하’에서 8년 동안 수학하고 돌아왔다. 원효(元曉)스님은 의상(義湘)스님과 함께 중국에 유학을 가다가 촉로수(?路水) 물을 마시고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도리(道理)를 깨닫고 집으로 되돌아 왔다. 원효(元曉)스님이 의상(義湘)스님보다 8살 나이가 많다. 두 분은 아주 친한 사이였다.

 

선묘낭자 설화(說話)가 깃든 영주 부석사(浮石寺), 부산 동래 범어사(梵魚寺)도 의상(義湘)스님이 세운 화엄사찰(華嚴寺刹)이다. 의상(義湘)스님은 제자(弟子)들도 많다. 중국 유학도 다녀와 조금 상이 붙어 있었다. 하루는 부산 기장 안적사(安寂寺)에서 있었던 일이다. 의상(義湘)스님께서 원효스님께 자기는 천궁(天宮)에서 오는 음식만 먹고 있다는 과시를 하고 싶어서 원효(元曉)스님을 청(請)해 함께 공양(供養)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날따라 천궁(天宮)에서 제 시간에 음식이 오지 않았다. 천궁공양(天宮供養)을 기다리던 원효(元曉)스님께서 절에서 그냥 되돌아 가셨다.

 

원효(元曉)스님께서 돌아가신 뒤 천궁(天宮)이 왔다. 의상(義湘)스님께서 “오늘 왜 이리 늦었는가(?) 원효(元曉)스님을 청(請)해서 함께 공양(供養)을 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제 때에 와야지...”라며 아쉬워 했다. 그때 천궁(天宮)이 말하기를 “온 산에 불이 나서 도저히 들어 올 수 없었다”라고 전했다. 물론 전설적(傳說的)인 얘기지만 의상(義湘)스님의 마음을 꿰뚫은 원효(元曉)스님께서 화광신중(火光神衆)을 데리고 와서 화광삼매(火光三昧)에 드니 온 산(山)에 화엄신장(華嚴神將)들이 전부 불꽃을 내뿜었다.

 

<의상(義湘)스님>께서는 절도 많이 짓고 10대 제자(弟子)도 있는 훌륭한 스님이다. 그렇지만 후대(後代)에 호사가(好事家)들은 불법(佛法)을 크게 통달(通達)한 면에서 또는 ‘불법(佛法)의 수행경지(修行境地)에서는 <원효(元曉)스님>의 수행경지(修行境地)를 따라가지 못한 것이 아니냐(?)’라고 말하기도 한다. 원효(元曉)스님의 화엄신장(華嚴神將)들은 <화엄경(華嚴經)>에 제일 처음에 신장(神將)들의 이름이 쭉 나온다.

 

때로는 경(經)을 다 읽지 못할 때 <화엄경 약찬게(華嚴經 略纂偈)> 정도 는 매일 한번 독송(讀誦) 하면 참 좋다. 아주 영험(靈驗)이 있다. 화엄신장(華嚴神將)이 옹호(擁護)를 해준다. 우리가 몸에 힘이 다 있다. 예로 그림 그리는 화가, 글씨를 잘 쓰는 사람 등......사람이 가지고 있는 기술이 밖으로는 안 보인다. 이처럼 모든 사람의 능력(能力)은 마음안에 다 갖춰져 있다. 기도(祈禱)를 많이 하면 이런 능력(能力)이 마음안에 갖춰져 힘이 생긴다. 

이런 힘이 생겨야 불교(佛敎)가 자기(自己) 것이 된다. 여러분들이 불교(佛敎)를 통해서 뭔가 힘을 얻어 놓은 것이 하나 있어야 불교(佛敎)가 내 것이 됐다 말할 수 있다. 기도(祈禱), 독송(讀誦), 사경(寫經)을 열심히 하든지..... 화두(話頭)에 하나드는 것만이 참선(參禪)이 아니다.

 

중국(中國) 송(宋)나라시대 최고의 무역항(貿易港), <영파(寧波)>에 <‘아육왕사(阿育王寺)’>라는 절이 있고, 고려왕자(高麗王子) 목연스님이 머물렀던 <‘천동사(天童寺)’>라는 절이 있다. 이 두 절은 서로 한 50리(里) 떨어져 있다. ‘아육왕(阿育王)’은 역대 임금 중에 최고의 선정을 베풀고 불법(佛法)을 위해서 어진 정치(政治)를 베풀었던, 인도(印度)의 ‘아쇼카왕’을 말한다. ‘아유왕(아쇼카)’이 중국(中國)에 까지 부처님 사리(舍利)를 하나 차려 보냈다. 부처님 사리(舍利)가 ‘아육왕사(阿育王寺)’에 왔다. 부처님 사리(舍利)를 모셨다. ‘아육왕(아쇼카)’이 보낸 부처님 사리(舍利)를 모신 절이라 해서, 인도(印度)의 마우리아왕조 3대 임금(아육왕(阿育王) 이름을 붙여 ‘아육왕사(阿育王寺)’라고 했다.

 

그곳에 간화선(看話禪)을 창시(創始)한 ‘대혜종고선사(大慧宗高禪師)’가 계셨다. 그래서 <간화선(看話禪)이 ‘아유왕사’에서 완성(完成)>됐다. 간화선(看話禪)은 <직지인심견성성불(直指人心見性成佛) 곧 바로 자기(自己)의 마음으로 향(向)하여 그 본성(本性)을 보아 불타(佛陀)를 이룬다.>는 우리나라 역사(歷史)속에서 가장 큰 영향력(影響力)을 끼친 선수행법(禪修行法)이다. 또한 임제종(臨濟宗)에서 최고(最高)의 지침서(指針書)로 간주(看做)되며, <조주종심선사(趙州從心禪師)>의 <개에게는 불성(佛性)이 없다>는 철저대오(徹底大悟) 화두(話頭)에서 그 기원(起源)을 이룬다. 

 

여기에 덧붙여 우리나라에서는 한국근대(韓國近代) 꺼져가던 불맥(佛脈)을 서산대사(西山大師 휴정(休靜1520~1604)의 선가귀감(禪家龜鑑)에서 공안(公案)을 얻어, 근대(近代) 한국불교(韓國佛敎) 선풍(禪風)을 일으킨 중흥조(中興祖) <경허선사(鏡虛禪師.1846~1912)>가 당대 최고의 선지식(善知識)으로 회자(膾炙) 되고 있다. 성우.경허선사(惺牛.鏡虛禪師)의 뛰어난 3대 제자(弟子)로는 일자무식(一字無識)으로 만주땅에서 짚신공양(供養)을 했던 <북녘의 상현달 수월선사(水月禪師1855~1928)>, 말년(末年)에 부산 진구 선암사에서 열반(涅槃)한 <혜월선사(慧月禪師1862~1927)>, 8.15 해방(解放) 소식을 접하고는 육바라밀(六波羅蜜)을 상징하는 무궁화 꽃잎 6장으로 ‘세계는 하나의 꽃’이라는 ‘세계일화(世界一花)’를 쓴<만공.월면선사(滿空.月面禪師.1871~1946)> 이렇게 <‘세 개의 달(月)’>이 밝게 비추고 있다.

  

그리고 1941년 조선불교 조계종(曹溪宗) 출범 당시 <초대(初代) 종정(宗政)>이며,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上院寺)>에 27년간 주석(主席)한 대자유인(大自由人) <<한암.중원선사(漢岩.重遠禪師1876~1951)>>가 있다. <한암.중원선사(漢岩 重遠禪師)>의 제자(弟子)로는 <유(儒).불(佛).선(仙)> 3교(三敎)를 비롯해 <주역(周易)>에 까지 통달(通達)한 <<탄허(呑虛)스님>>과 보문(普門), 난암(煖庵), 고암, 청담, 월하, 서옹스님, 등이 있다.

 

다시 중국 영파(寧波)로 되돌아 가서 <‘아육왕사(阿育王寺)’>에서 50리(里)에 밖에 떨어져 있던 <‘천동사(天童寺)>’는 선종의 근본 도량으로 조동종의 <묵조선(?照禪)>의 주창자 <‘굉지정각선사(宏智正覺禪師. 1091~1157)>’가 있던 곳으로 묵조선(?照禪) 그곳에서 일어났다. 묵조선(?照禪)은 화두(話頭)를 안들고 모든 생각을 가라 앉히는 <‘성인(聖人)은 깊은 마음으로 묵묵히 비춘다’>라며 명상수행(명상수행)을 실천(實踐)했다. 부처님 당시에도 화두(話頭)라는 것은 없었다. 화두(話頭) 안들어도 앉아서 마음을 고요히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선(禪)이다. 생각을 고요히 하는 것, 숨들이 마시는 것을 헤아리는...... 저도 참회진언(懺悔眞言), 백일기도(百日祈禱) 등 수 많은 것을 다 해 봤다. 기도(祈禱)하다 선정삼매(禪定三昧)에 들어 한 1분 정도 지난 것 같은데 3시간이 지난적도 있었다.

 

이런 어떤 경험(經驗), 체험(體驗)이 있어야 불교(佛敎)의 자기화(自己化) 불교(佛敎)가 내 것이 된다. 아무 체험(體驗)이 없는 불교(佛敎)는 구경만 하는 것이다. 가게에 번질나게 드나들어도 돈 주고 안 사면 가게에 있는 물건(物件) 내 물건(物件)이 안된다. 사경(寫經), 독송(讀誦), 약찬게 독송(略纂偈 讀誦), 참회진언(懺悔眞言), 일타스님 때부터 권해서 했던 광명진언(光明眞言) 등 이런 수행(修行)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참회진언(懺悔眞言) 부모, 이웃, 형제들한테....참회(懺悔) 할 것 많다. 모든 것이 내 근기(根氣)에 맞춰서 나름대로 공부(修行)를 해서 거기에서 힘을 얻어야 불교(佛敎)가 내 것이 된다.

<둘째> 불교(佛敎)가 생활속에서 실천(實踐)이 돼야한다. <불교(佛敎)의 생활화(生活化)>이다. 요즘 생활불교(生活佛敎) 많이 강조(强調)한다. 생활불교(生活佛敎), 사실 불법(佛法)의 이치(理致)를 알고 보면 내 생활(生活)하는 것 자체가 수행(修行)이다. 빨래하는 것, 밥 짓고, 청소하는 것도 다 참선(參禪)하는 것과 똑같은 수행(修行)이다. 직장인들이 직장에서 업무보는 것, 그 자체가 수행(修行)이다. 참선수행(參禪修行), 염불수행(念佛修行), 사경수행(寫經修行), 경전(經典)을 읽는 것과 똑같은 수행(修行)이다.

 

그런 마음에는 항상 그 사람 마음속에 부처님이 살아 있다. 우리 마음속에는 본래(本來) 부처가 살아 있다. 그런데 우리는 죽은 상태로 살고 있다. 내 마음속에 부처가 안 살고 있다. 예를 들면 저 거리에 있는 나무가 내 눈에 보이는데, 저 나무가 내 눈에 보일 때 눈(眼)은 창문과 같은 역할(役割)을 하는 것이고 마음이 보는 것이다. 그러면 저 나무는 내 마음 안에 들어 있는 것이다. 또 달리 보면 저 마음이 내 마음이란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무얼 볼 때, 그 보여지는 물체(物體)의 모습이 내 마음이다. 소리(音)를 낼 때 듣는 소리(音)가 내 마음이다. ‘내 마음(心)이 아니면 그 소리(音)는 안들려지고 그 물체(物體)는 안보여지는 것이다.’ 불법(佛法)이 이렇게 심오(심오)한 것이다. 그래서 이런 차원에서 우리가 불교(佛敎)를 생활화(生活化) 해 나가면 모든 것이 불(佛)로 통(通)한다.

 

옛날 큰스님들 말에 집집마다 ‘자기집 문(門) 밖을 나서면 장안(長安)으로 가는 길이 있다’라는 말이 있다. 어디든지 김해(金海)에 사시는 신도(信徒)님들 누구든지 자기집 밖에 나서면 서울 갈 수 있다. 그러면 그 서울은 무엇이냐(?) 부처를 상징(象徵)한다. 집 밖에 전부 장안(長安)으로 통(通)하는 길이 있다. 그래서 우리들 삶의 현장(現場)이나 실생활(實生活)의 경계(境界)가 그대로 부처로 가는 길이다. 이것은 <불교(佛敎)가 자기화(自己化)> 된 사람이 불교(佛敎)를 실생화(實生活) 하는 그 경계(境界)를 말하고 있다.

 

그래서 불교(佛敎)를 내 마음속에 살아 있는 부처가 움직이듯 움직여야 한다. 내 마음이 부처인데 우리가 불교(佛敎)의 전법수행(傳法修行)을 하지 않으면 죽은 부처가 된다. 사람도 정신(精神)이 올 곧게 차려있는 그 사람은 정신(精神)이 밝고 올바르다 하지만 틀린 생각, 사람은 마음속에 생각이 일어난다.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내 마음속에 어리석고, 미혹(迷惑)한 잘못된 생각이 일어나면 그 생각 번뇌(煩惱) 하나가 내가 누려야 할 복(福), 행복(幸福)을 파괴해 버린다. 그래서 사람은 자기 마음속에 일어난 생각을 잘 살펴 살려야 할 생각은 잘 살려야 한다. 

음력 설 전후(前後)해서 난꽃이 피는데 저도 요즘 난분(蘭盆)에서 꽃대가 올라와 가꾼 사람으로서 기분이 좋다. 그래서 식물(植物)을 가꿀 때도 그 식물(植物)이 잘 자라 꽃이 피면 기분이 좋다. 내 마음속에 좋은 생각 하나 살아나면 이것이 내 마음의 행복(幸福)을 불러오는 것이다. 그래서 잘 보살펴서 내 마음속에 그 생각이 유지(維持) 되도록 보호(保護)해야 할 생각이 있고, 쫓아내야 하는 생각은 쫓아내야 한다. 쫓아내야 할 생각을 그냥 놓아 두면 이것은 백해무익(百害無益)한 것이다. 이것이 나중에 마장(魔障)이 되고 화근(禍根)이 된다. 중요하다. 그래서 이런 불법(佛法)을 통해 이러한 이치(理致)를 잘 알아야 한다. 그래서 불교(佛敎)를 <자기화(自己化)>하고 <생활화(生活化)>해야 한다.

 

<셋째> 오늘날 이 시대(時代)는 모든 인문(人文)이 고도(高度)로 발달(發達)되어 가지고 알지 못하면 지금 살아가기가 힘들다. 정보사회(情報社會)다. 이 불교(佛敎)가 아주 고차원적(高次元的)인 그 부처님의 여러 가지 법문(法文) 내용 교설(敎說)이 있는데, 이것을 전부 지적(知的)으로 어느 정도 이해(理解)를 해야 한다. 오늘날 필요한 것은 한국불교(韓國佛敎)의 <지성화(知性化)>다. 지금 사회(社會)에는 얼마나 학문(學問)도 발달(發達)되고 사람들의 어떤 사고력(思考力)이 향상(向上)되고 있다. 그런데 이 종교계(宗敎界)만 사회적(社會的)인의 지성도(知性度)에 항상 처진다. 이러면 종교(宗敎)가 사회적(社會的)인 역할(役割)을 할 수 없다.

 

<지성화(知性化)>가 돼야 한다. 불교(佛敎)는 고도(高度)의 지성(知性)이다. 기독교의 성경(聖經)은 천동설(天動說)에 대한 얘기다. 16세기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오시대 때부터 이미 천동설(天動說)은 다 죽었다. 성경(聖經)은 전부 천동설(天動說)에 대한 얘기다. 지동설(地動說) 얘기가 아니다. 이 불교(佛敎)야 말로 고도(高度)의 지성(知性)이다. 그래서 불교(佛敎) 경전(經典)을 공부해야 하고, 교리(敎理)도 공부해야 하고, 지식(知識)으로 하나하나 알아가면서 정리(整理)를 해야 한다. 이 버전이 상위(上位) 버전이다.

 

<지성화(知性化)> 되지 아니하면 이 시대(時代)에는 앞으로 점점 발달 돼 나가는 현대(現代)에서는 사용 가치(價値)가 없다. <불교(佛敎)가 지성화(知性化)> 되지 않으면 골동품적인 가치(價値)는 남지만 사용 가치(價値)는 없다. 그래서 지성화 돼야된다. 우리가 물론 소박한 마음에서 독실한 신심(信心)을 길러가는 이런 차원에서는 번거롭게 들릴지 모르지만 좀더 불교(佛敎)를 향상(向上) 시키고 내 수행(修行)의 경계(境界)를 높여가기 위해서는 이런 문제를 생각을 해 봐야한다. 

그래서 오늘도 기도(祈禱)를 시작하면서 인등기도(引燈祈禱)를 시작하는 것 같은데 오랜 풍습(風習)이다. 인등(引燈)은 예로부터 속신(俗信)하고 어울려서 전생업(前生業)을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나온다. 건강(健康)하지 못한 애기들은 절에서 기발한 방편(方便)을 써 가지고 애기 낳아서 파는 경우가 많았다. 불보사찰(佛寶寺刹) 통도사(通度寺)도 그렇고 큰절 들어가는 입구 바위에 이름이 많이 새겨져 있다. 이것을 탁명(拓名)이라 한다. 재산(財産)이 좀 있는 집안에서 가능했다. 가난한 서민(庶民) 집안에서는 엄두도 못냈다.

 

옛날에는 의술(醫術)도 발달해 있지 못하고 애기 하나 키우기가 쉽지 않았다. 아주 원시적(原始的)인 생각이지만 돌에다 이름을 새겨 놓으면 그 애기가 명(命)이 길어진다고 믿었다. 있는 집에서는 석공(石工)을 불러서 사다리를 놓고 높은 곳에 올라가서 가족(家族)들의 이름을 새겼다. 그게 가문(家門)의 대(代)를 잘 유지(維持)하기 위한 소원(所願)에서 그런 것이다. 자손(子孫)들이 죽지않고 건강(健康)하게 명(命)을 다 누리고 살도록 바라는 뜻에서 그런 이름을 새기는 풍습(風習)이 나왔다.

 

인등(引燈)을 애기 놓자마자 밝히면 그 아이가 청소년(靑少年)을 지나면 영리(英異)해 진다. 불가사의(不可思議)하다. 그래서 인등(引燈)을 켜는 풍습(風習)이 먼저 정착(定着)이 된 것이다. 법당(法堂)에 등(燈) 켜는 것은 30년 전에는 없었다. 하지만 시대(時代)의 요구(要求)에 의해서 사월초파일 부처님오신날을 봉축(奉祝)해 법당(法堂)에 등(燈)을 밝히게 됐다. 이것은 인등(引燈)이 원래(原來) 이렇게 중요한 의미(意味)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소개(紹介)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불교(佛敎)의 풍습(風習)이 시대(時代)에 따라서 이런 저런 것이 생기는데 본래(本來) 고유(固有)한 오랜 전통(傳統), 이것이 중요한 것이고 거기에 대해서 우리가 바른 생각을 가져야 한다. 불교(佛敎)의 인등(引燈)을 밝혀야 한다. 이 지역(地域)에서 불자(佛者)로서 우리집에 신심(信心)있는 가족(家族)이 한 사람 있어도.... 한 집안에 할머니가 불심(佛心)을 의지(意志)해서 수행(修行)했다면 이 은덕(恩德)이 자손(子孫) 몇 대(代)로 이어진다. 저 산중(山中)에 만나보지도 못했지만 어느 훌륭한 스님이 수행(修行)을 잘 하고 있다면 그 선근공덕(善根功德)은 이루헤아릴 수 없이 크다. 

우리가 지금 금생(今生)에 만나고 어울리고 있는 사이지만 지구촌(地球村) 곳곳에 인연(因緣)이 있다. 사람의 수행공덕(修行功德)은 세세생생(世世生生)으로 이어진다. 사람이 선근(善根)을 성취(成就)해 놓으면 그 선근공덕(善根功德)이 때(時)와 장소(場所)를 통해서 인연(因緣)이 있는 자리를 꼭 찾아간다. 지구촌(地球村) 곳곳 인연(因緣)에 의해서 모든것이 다 영향(影響)을 미친다. 사람도 인연(因緣)에 의해서 계절(季節)따라 다르지만 남풍(南風)이 불고 북풍(北風)이 불고 비(雨)가 내리는 것도, 눈(雪)이 내리는 것도 인연(因緣)인데 실상(實狀)에서 우리는 무심(無心)히 지난다.

 

그래서 우리가 좋은 인연(因緣)을 하나 만들어 놓으면 이 인연(因緣)이 꽃 향기(香氣)처럼, 꽃이 피면 향기(香氣)가 바람따라 날려가잖아요. 어디에 전(傳)해져도 전(傳)해진다. 향기(香氣)는 풍기(風氣)는 것이다. 공기(空氣)는 통(通)하는 것이다. 이 우주공간(宇宙空間)이 무한(無限)히 통(通)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치(理致)를 잘 알아서 오늘 신년(新年), 새해맞이 법회(法會)를 통해서 새로운 신심(信心)을 가다듬고 불교(佛敎)를 내 것으로 만들자. 오늘 말한 불교(佛敎)의 <생활화(生活化)>, <자기화(自己化)>, <지성화(知性化)> 하자. 불교(佛敎)를 알고 믿자. 오늘 세가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며 법(法)을 주셨다.

 

<사홍서원(四弘誓願)> 음성공양(音聲供養)을 올린 후, <산회가(散會歌)>를 끝으로 일정(日程)을 끝냈다. 김해바라밀선원(金海波羅蜜禪院) 도반(道伴)들은 다함께 합장(合掌)한 채 일원(一圓)을 만들어 <”부처님 바라밀선원 불사(佛事)가 원만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도(祈禱) 합니다“>라고 발원(發願)했다. 오는 셋째주 일요일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은 <성도재일(聖道齋日.음 2월8일)>에 통도사(通度寺) 반야암(般若庵) <요산(樂山) 지안(志安) 큰스님의 법문(法門)>이 계속 이어진다.

 

법회(法會)를 진행(進行)한 <성화상 거사(居士)님>께서는 2016년 병신년(丙申年) 한 해를 불자(佛者)로서 어떻게 살아야할지 <요산(樂山) 지안(志安)큰스님>께서 법문(法門)을 주셨다. 감사합니다. 우리 불자(佛者)님 모두는 불교(佛敎)의 자기화(自己化)를 화두(話頭)처럼 생각하면서 실천(實踐)하는 삶이 되어야 겠다. 공지 사항은 스님 법문(法門)에서 언급(言及)되었지만 인등(引燈)이란 부처님 전에 등불을 켜는 것으로 <인등(引燈)의 인(引)이란 ‘끌어낸다’>는 뜻으로 <인등(引燈)을 밝힘으로서 부처님의 복덕(福德)과 지혜(智慧)를 끌어낸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항상 기도(祈禱)가 끊이지 않는 김해바라밀선원(金海波羅蜜禪院)에서는 신중당(神衆堂) 옆에서 365일 24시간 불을 밝힐 크리스탈 관음인등(觀音引燈) 접수를 시작한다. 매월 음력15일 보름날 사시(巳時)에 <인등불공법회(引燈佛供法會)>를 열어 인등불공(引燈佛供) 올리신 분들의 뜻하시는 모든 일들이 성취(成就)하기를 간절히 발원(發願)한다. 뜻 있는 불자(佛者)님들은 수희(隨喜) 동참(同參)하시어 부처님의 가피(加被)를 입으시기 바란다. <1월3일(일요일)>은 주지(住持) 인해(仁海)스님께서 <관음재일(觀音齋日) 특별법문(特別法門)>이 있다. 또한 오는 <1월6일(수)> 오전 10시 인해(仁海) 주지(住持)스님께서 직접 <화엄경(華嚴經)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 특강(特講)을 시작해 5주(周) 동안 진행(進行)한다.

 

그리고 <독거노인(獨居老人)을 위한 자비(慈悲)의 쌀을 공양(供養)>받고 있다. 여러분들께서 올리시는 자비(慈悲)의 쌀은 <천일기도 회향일(千日祈禱 廻向日)>에 전달(傳達)할 예정이다. 법회(法會)가 끝난 후 다경실(茶經室)에서 주지(住持) 인해(仁海)스님께서 바리스타가 되어 커피를 직접 내려주신다. 커피를 마시면서 정겨운 자리를 함께하는 시간 가지시기 바란다. ‘선정수보살님’이 직접 만든 예쁘고 사르르 녹는 마카롱과 쵸코렛도 있다.“라며 김해바라밀선원(金海波羅蜜禪院)의 알림을 열정(熱情的)으로 소개(紹介)했다.

 

이밖에도 김해바라밀선원(金海波羅蜜禪院)은 <부처님 도량(道場) 창건(創建)>이라는 원력(願力)으로 <천일관음기도(千日觀音祈禱)>를 시작했다. 그간 신도님들께서 보내주신 기도금(祈禱金)을 종잣돈으로 해 <인근에 300여 평>의 땅을 구입, 부처님 도량(道場)을 건립(建立)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 모두는 관세음보살님(觀世音菩薩)의 가피(加被)와 바라밀선원 불자님들의 원력(願力) 덕분(德分)이다. 오는 <2월21일(일) 오전 10시> 많은 큰스님들을 모시고 여법(如法)하게 <천일관음기도(千日觀音祈禱)> 회향(廻向)을 한다.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동참 바란다.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 관세음보살마하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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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6-01-06 21: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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