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봉 기자 기자
성공불 융자금과 자원외교 관련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여기에는 성완종이라는 경제인이 그 주인공이다.
정부가 박정희 전대통령 시절에 오일쇼크로 석유수급의 물량확보가 어려워지자 1977년 12월 입법을 만들어 국회를 통과 시킨 것이 바로 성공불 융자금 제도다. 이는 정부가 유전개발을 위해 먼저 지불해 주는 조건이다. 즉 성공하면 이자를 포함해 정부에 지불하고 유전개발에 실패하면 융자금을 돌여주지 않아도 된다. 이 때문에 성공불 융자금을 받으려고 기업들이 정권과 결탁하는 모순이 발생한다.
성완종 사건은 바로 성공불 융자금에서 시작된다. 한국석유공사로부터 330억 원의 성공불 융자금을 받고 경남기업은 자원외교에 뛰어들었다. 결국 이 돈은 정계의 검은 돈으로 바뀌게 되고 성완종은 비참하게 최후를 맞는다.
1973년 '한국은 모든 것이 멈췄다'는 표현이 적합할 만큼 석유파동의 위기에 몰렸다. 온 국민은 석유를 사기 위해서 주유소에 장사진을 쳤다. 박정희 전대통령은 급기야 석유위기를 면하기 위해 국영석유회사인 한국석유공사를 설립 한다. 그리고 유전개발에 관련한 사업가들을 끌어들인다.
최계월이 성공불 융자금의 첫 수혜자이다. 그는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일찍이 6살 때 일본으로 건너 갔다. 그리고 인도네시아에 코데코에너지라는 회사를 차린다. 해외 유전에 전혀 지식이 없던 한국은 최계월의 속임수에 넘어가고 6천만불 이라는 성공불 융자금을 지불하게 된다. 석유사업법 제17조 2항에 의거 유전개발의 성공조건으로 돈을 받았지만, 그는 유전개발에 실패하고 성공불 융자금을 지불하지 않았다.
성공불 융자금은 먼저 받는 사람이 임자다. 물론 정권의 실력자와 유착관계가 있어야만 받을 수 있는 돈이다. 그러다 보니 하이에나처럼 성공불 융자금을 받으려고 아우성이다.
이후 성완종이란 기업인이 석유공사로부터 성공불 융자금을 받았다. 그러나 그 또한 자원외교에 관련 법의 심판대에 올랐고 결국 자살이라는 삶으로 비참하게 최후를 맞았다.
최계월도 부도덕적인 사업가였고, 온 국민의 관심의 주인공으로 떠오른 성완종이도 깨끗한 정치인이 아니다.
정부는 이번 기회를 맞이하여 성공불 융자금 제도를 파기해야 한다. 더 이상 국민의 혈세로 지급되는 성공불 융자금으로 인한 부도덕적인 기업가의 양산을 막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