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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 자기가 본래 부처입니다. 모든 중생 행복을 바랍니다. - 성철스님 퇴옹전(退翁殿) 기념관 개관
  • 기사등록 2014-10-03 20: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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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세는 잠깐이요 미래는 영원하다. 잠깐인 현세의 환몽에 사로잡혀 미래의 영원한 행복을 잃게되면 이보다 더 애통한 일은 없다. 만사를 다 버리고 오직 정진에만 힘쓸지어다. 화두를 확철히 깨치면 미래겁이 다하도록 자유자재한 대행복을 얻느니라. 깨치지 못하고 무한히 연속되는 생사고를 받을 적에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리오. 신명을 돌보지 말고 부지런히 참구하라.>

 

“내게 없는 부처를 찾는게 아니라 내가 본래 부처임을 깨달으면 그만이다” 성철 스님은 해인사 초대 방장시절 사부대중을 향한 백일 법문을 통해 수행을 “자기 호주머니 속에 이미 있는 보석을 찾는 일”이라며 생활 속 실천으로 불교(진리)를 일깨웠던 가야산 호랑이, 한국불교계의 큰 별 ‘퇴옹(退翁) 성철스님 기념관’이 지난 9월 30일(화) 개관했다.

 

개관식에는 20대 시절 우연히 해인사 백련암에서 성철스님을 만난 인연으로 “속이지마라!”라는 좌우명을 받고, 참선 공부를 위해 ‘삼서근(麻三斤)’ 화두를 받아 23년간 큰스님(성철)을 시봉하며, 스승의 삶과 가르침을 담은 <성철스님 시봉이야기>로 유명한 부산 중앙동 <고심정사> 주지 원택스님(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을 비롯해 법보종찰 해인사 주지 선해스님, 종단의 큰스님들, 사부대중 500여 명 및 허기도 산청군수가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원택스님은 저 멀리 지리산 천황봉이 훤히 바라다 보이는 퇴옹전(退翁殿)의 ‘부처를 이루’는 성불문(成佛門) 앞에서 감개무량한 지난 세월의 편린들을 추억하며 기념사를 통해 “이번에 개관한 ‘성철스님 기념관’ 퇴옹전(退翁殿)은 2여 년 동안 설계를 두 세 번 바꿔가면서 1년 6개월 만에 정부지원 없이 신도님들의 십시일반 보시금 20억 원으로 불사를 진행해오늘의 완공을 갖게 됐다.

 

석굴형식의 법당은 방문객이 편안하게 좌선과 기도를 할 수 있는 결집의 공간으로 지상 2층 건물이다. 부처를 이루는 성불문(成佛門) 위에는 살아 생전 큰 스님께서 늘 말씀하셨던 ‘일체 중생이 모두 부처여야 한다’는 뜻에 따라 미륵존불을 형상화 했다.

 

건물 외부 앞부분 연좌대에 8개의 기둥이 바쳐져 있는 것은 불교의 ‘팔정도’를 상징한다. 초승달 같은 곡선은 중국 사막의 샘, ‘월하천’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월하천’은 인도로 떠나는 모든 불.법.승들의 출발지로 인도로 넘어가려면 ‘타클라마칸즈’라는 죽음의 사막을 지나야 한다. 목숨을 걸고 죽음의 사막을 지나 인도에 가서 부처님 법을 받아오겠다는 ‘완전한 불법 정신’을 나타내고 있다.

 


석굴법당 안에는 성철스님께서 해인사 방장시절 오른손에 주장자를 짚고 하안거, 동안거 때 기세찬 설법의 순간을 연좌대에 흰 대리석으로 재현, 생명력의 기(氣)가 터져 나오는 듯한 성철 큰스님을 만날 수 있다. 성철 큰스님 뒷 벽면 좌.우에는 미륵불을 모셨으며, 그 양 옆 벽면에는 관세음보살상과 보현보살상이 조각돼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다. 이밖에도 양 벽면에는 기원정사(祇園精舍)에서 부처님께서 천불화현의 모습으로 외도들을 설법, 천불화현을 형상화해 했다. 또한 금강경(金剛經)에 나오는 1,250인구(人俱)에 20분 모자라는 1,230인구(人俱)를 모셔 아쉬움을 남긴다” 라며 “불사를 마칠때까지 500명의 동참자들이 더 필요하다는 부끄러운 말씀을 드리면서 인사에 가름합니다”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벽에는 “모든 행복은 남을 돕는 데서 온다. 나를 위하여 남을 해침은 불행의 근본이요. 참다운 행복은 오직 나를 버리고 남을 돕는 데서 온다. 천하에 가장 용맹스러운 사람은 옳고도 남에게 질 줄 아는 사람이다. 칭찬과 숭배는 나를 타락의 구렁으로 떨어뜨리는 것이고 천대와 모욕만큼 나를 굳세게 하는 것은 없다” 성철 스님의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 법어가 적혀 있어 이 곳을 찾는 사부대중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

 

법당안 <공부인에게 주는 글>에는 “수행이란 안으로는 가난을 배우고 밖으로는 모든 사람을 공경하는 것이다. 좋고 영광스러운 것은 항상 남에게 미루고 남부끄럽고 욕되는 것은 내게 돌리는 것이 공부 가운데 가장 큰 공부이며 수행자의 행동이다. 천하에 가장 용맹스러운 사람은 옳고도 남에게 질 줄 아는 사람이다. 칭찬과 숭배는 나를 타락의 구렁으로 떨어뜨리는 것이고 천대와 모욕 만큼 나를 굳세게 하는 것은 없다. 어려움 가운데 가장 어려운 것은 남의 일을 알고도 모른척하는 것이다.

 



내 옳고 네 그름을 버리고 항상 나의 허물 나의 잘못만 돌아보아야 한다. 모든 행복은 남을 돕는데서 온다. 나를 위하여 남을 해침은 불행의 근본이요 참다운 행복은 오직 나를 버리고 남을 돕는데서 온다. 사람 몸 얻기도 어렵고 부처님법 만나기도 어렵다. 얻기 어려운 사람 몸을 얻어 더 한 층 만나기 어려운 부처님법을 만났으니 목숨을 떼어놓고 정진하여 속히 한 물건을 깨쳐야 한다. 이렇게도 얻기 어려운 이 몸을 금생에 제도하지 않으면 다시 어느 생에 공부해 이 몸을 건져 제도하리요“

 

또한 외벽 한켠의 오석에는 성철스님 생전의 활동 모습을 한자리에서 사진으로 볼 수 있으며, 성철스님이 생전에 구도했던 곳과 연결되는 QR코드가 외벽에 새겨져 이노베이션 테크놀로지(IT)의 최첨단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 간 원택스님은 성철스님의 상좌로 성철스님 열반 후 사리탑 조성 및 진영. 존상 제작, 겁외사 창건, 성철스님의 사상을 조명하는 학술포럼 개최를 비롯해 불교인재원과 함께 성철스님 발자취를 찾아 떠나는 성철스님 수행도량 순례법회 등을 진행, 스승에 대한 끝없는 시봉으로 불교계의 칭찬과 귀감이 되고 있다.

 

원택스님은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알 수가 없다. 알려지지 않은 진실은 없는 진실이나 마찬가지다. 위대한 삶과 위대한 가르침을 가까이서 보고 듣고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던 불제자로서 대중에게 ‘여시아문’ 해야하는 의무감 때문이다. 성철스님의 선수행 정신과 선사상이 전설로만 남아 있지 않고, 시대를 초월해 살아있는 진실로 존경받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념관을 건립했다”라고 말해 한국불교 선맥에 초석을 다졌던 스승에 대한 끝없는 추앙으로 부처님 제자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입에서 입으로 전했듯이, 스승의 가르침과 삶을 대중에게 알려 모든 중생의 부처화, 불국토를 위한 원력으로 제자된 도리를 다하기 위해 평생을 바쳐 헌신하고 있는 열정에 마음으로 박수를 보냈다.



법보종찰 해인사 선해 주지 스님은 축사를 통해 “오늘 이렇게 사부대중이 다 모여서 큰 스님의 기념관을 개축하기 위해 오신 것을 아셨는지 날씨까지 좋은 화두가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겁외사에서 새로운 건물을 지어서 여러분들에게 보여드리는 날 입니다. 성철대종사의 탄신 100주년과 열반 20주기에 맞춰 오랜 시간 준비하고 노력한 기념관을 선보이니 해인사 주지로서 감개무량하고 마음이 설렘니다. 성철스님은 수행과 원력으로 근대 한국선불교의 뼈대를 이루신 큰 선지식으로 대한불교조계종의 근간을 이뤄내신 근대 한국 선불교의 시조이십니다.

 

1967년 최초 한국불교종합 수행도량인 해인총림의 초대 방장으로 계시면서 수 많은 수행자들을 길러내시고 빈틈없는 수행으로 젊은 수행자들의 사표가 되셨습니다. 어느덧 큰스님의 탄신 100년이 넘었고 열반에 드신지도 20년이 넘었습니다. 종단 안팎으로 안타까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요즘 큰스님을 기리고 생전 모습을 볼 수 있는 기념관을 건립하게 되어 참으로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행복한 세대였습니다. 우리 곁에 계셨던 선지식 성철 큰스님을 곁에서 시봉하고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생전에 후학들을 가르치며 쩌렁!쩌렁! 가야산을 호령했던 큰스님의 우뢰와 같은 소리가 지금도 저의 마음을 울립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가면 모든 것은 잊혀지기 마련입니다.

 


원택스님께서 수고하시어 큰스님의 「백일법문」을 비롯한 「시봉이야기」를 그나마 책으로 남기게 되어 스님을 그리워하는 많은 이들에게 위안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 다행히 그 문도들이 힘을 합쳐 겁외사에 큰스님의 가르침과 수행력을 한 눈에 살필 수 있는 기념관을 열게되어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큰 스님을 모르는이나 친견하지 못했던 많은 이들에게 생전의 행적과 용맹정진의 가풍을 느끼게 하고 그 가르침과 사상이 먼 후대에까지 잘 전해지길 바랍니다.

 

기념관 안에는 큰스님의 친필 불(佛)자를 비롯한 생전의 꿈과 석가모니 부처님, 아미타불, 약사여래부처님을 모시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바세계에 불국정주인 연화장 세계를 구현해 놓았습니다. 석굴암과 중국의 석굴을 이 자리에 구현한 것 같은 아름다움과 웅장함이 서려 있습니다. 잠 많이 자지 말고 행주좌와 목동정간에 늘 화두 챙기라시던 큰스님의 가르침이 후대에 널리 전해져 온 누리에 선불교가 부흥하고 백척간두 진일보하는 수행자가 많아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오늘 겁외사 성철 대종사 기념관을 개관하기까지 큰 정성을 보태주시고 신심을 아끼지 않으신 원택스님과 그 문도들, 개원을 준비해 온 공사관계자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큰스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실천하는 전국 각지의 많은 불자님들께도 부처님의 가피가 향상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허기도 산청군수는 축사를 통해 “전국 각지에서 큰스님들께서 많이 오셨는데 제가 감히 무슨 말씀을 드리겠습니까? ‘우리 지역이 이러한 지역이다’ 라고 감히 안내해 드리고 말을 그치겠습니다. 여기가 종교계의 큰 별이신 성철스님의 생가터 입니다. 20KM정도 가면 남명선생님이 계시던 산천재가 있습니다. 또 바로 여기 건너편에 의류혁명을 일으키신 문익점선생님이 사시던 곳이 있습니다. 이렇게 이 시대와 과거를 통해 우리에게 깨우침을 가질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성인분들이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 산청사람들은 선비의 고장이라는 말을 듣고 살고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분들은 다른데 계시는 분들 보다 훨씬 성품도 곱고 또 생산하는 농산품도 정성을 들여 재배하기 때문에 우리 몸에 정말 좋습니다. 앞으로 산청을 꼭 잊지 마시고 많이 사랑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성철스님 기념관이 있기까지 원택스님께서 계속해서 노고를 하고 계신 모습을 다니면서 많이 보아왔습니다. 저렇게 큰스님을 섬기는 분이 있기 때문에 오늘날 그 큰 뜻을 후세에 전할 수 있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아뭏튼 이 지역에 오신 선해스님을 비롯한 많은 큰 대덕스님들과 사부중생 여러분들께 성철스님의 자비스러운 가피가 더욱 더 많이 전달되기를 바라면서 오늘 참석하신 모든 분들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성철 스님은 23세 때 출가해 <하늘 가득한 큰 일들 화로에 한 점 눈송이요/ 바다 뒤덮는 뛰어난 과업 태양아래 이슬일세/ 그 누가 한 조각 꿈같은 삶을 살다 죽어가랴/ 만고의 진리를 향해 초연히 홀로 걸어가노라> 출가송(出家頌)을 남겼으며, 황하수 역류하여 곤륜산에 치솟으니(黃河西流崑崙頂)/ 해와 달은 빛을 잃고 땅은 꺼지도다(日月無光大地沈)/ 문득 한번 웃고 고개돌려 서니(處然一笑回水立)/ 청산은 예대로 흰구름 속에 있네(靑山依舊白雲中) 라는 오도송(悟道頌)을 남겼다.

 

성철스님의 법호를 딴 기념관 <퇴옹전(退翁殿)>은 어른에 대한 끝없는 공경심으로 성철스님의 생가를 복원해 놓은 ‘겁외사(劫外寺)’를 마주보는 길 건너편에 자리해 진리 속에서 참된 행복을 발견하며 자기 안의 자기를 찾는 참선 수행의 장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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