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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성게로 시작해 화엄일승법계도를 돌다 - 김해바라밀선원 제2기 불교대학 <통도사 반야암> 수계 및 백중 기도
  • 기사등록 2014-07-2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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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의 하나로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불보사찰 대한불교조계종 통도사>로 향하는 마음은 언제나 고향 같다. 사시사철 그 언제나 대자연을 품고 있는 유구한 세월 속 오랜 전통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푸르고 청정한 나무 한 그루에서부터 이끼 낀 돌멩이 하나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 유서 깊어 환희심이 물결처럼 너울져 번진다.

불이문(不二門)을 통과하는 순간 양 옆으로 빼곡이 즐비한 통도사 청정도량의 가이없는 역사를 말해 주는 푸르른 소나무들에게서 ‘감인대(堪忍待)’를 느낀다. 무수한 중생(衆生)들의 업(業)의 장애를 싣고 가람 한가운데로 머뭇거리지 않고 쉴 새 없이 흐르는 내(川)의 맑은 물소리에 두 귀를 쫑긋 세운다.

선지식(善知識)을 찾아 홀로 이 길에 들어서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그 하염없는 삶의 무게들을 다 내려 놓고 오랜 세월 ‘훠이훠이’【「완화 삼(完花 衫)」차운 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 백리(七 百里)/ 나그네 긴 소매 꽃 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조지훈의 시(詩)】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 백리/ 술 익는 마을 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 듯이 가는 나그네/ 박목월의 시(詩) 「나그네」】가 되어 걷는 중생(衆生)들의 귀의처(歸依處)가 된 피안(彼岸)의 세계!

 
계사(戒師) 지안(志安) 큰스님의 상주처 ‘반야암’은 영축산의 신령한 기운들을 감싸 안고 끝없는 대자연이 펼쳐진다. 무수한 흰 연꽃이 진한 향기를 내 뿜는 연밭과 잡초 무성한 풀섶과 벼가 자라는 푸른 들녘의 논과 싱그런 열매들이 알알이 영글어 있는 매실밭을 지난다.

‘반야암’ 표지석에서 우측으로 난 길로 들어서면 무성한 소나무 숲 우거진 곡선을 따라 통도사 맨 끝자락에 100여 종의 꽃과 나무들이 어우러진 고즈넉한 ‘열반의 세계’로 운치있게 자리해 있다.

학창시절 ‘타이스’의 명상곡을 들으며 오랜 세월 단련된 명상에서 ‘念念自覺(념념자각)’의 일상을 맞는 축복을 알았다. 여기 연기(緣起)로 이어진 정법(正法)의 선지식 <요산(樂山) 지안(志安) 큰스님>과 <수담 인해(仁海) 주지스님>을 계사로 일불성(一佛性)으로 나아가고 있는 <대한불교조계종통도사 김해바라밀선원> 도반들은 불교의 궁극적 목표인 ‘행복’의 씨앗들을 이미 발아 시키고 있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이 아닐 수 없다.

<대한불교조계종통도사 김해바라밀선원>에서는 지난 6월 7일(토) 제2기 졸업생들의 수계 및 지안 큰스님께서 상주하는 통도사 <반야암 템플스테이>를 위해 오후 5시 30분 반야암에 도착했다.

저녁 시간 지안(志安) 큰스님의 법문 이후 법당에서 피아노 연주에 맞춰 000선생의 열정적인 지도 아래 다함께 소설 <원효대사>를 쓴 춘원 이광수 작사 찬불가를 배웠다. 음악적 멜로디가 상황에 따라 우리에게 와 닿는 매력은 오묘한 힘을 지닌다. 찬불가 연습이 끝난 뒤 캄캄한 어둠속에서 옹기종기 다들 정해진 숙소로 가서 새벽 예불을 위해 잠을 청했다.

만물이 깨어나는 신새벽 축시(丑時), 인해(仁海)스님의 도량석 소리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법당으로 갔다. 향이 피어오르는 촛불 화안히 밝혀진 법당에 정좌해 살며시 두 눈을 감았다. 호흡을 가다듬었다. 한 줄기 바람에 싱그럽고 짙은 소나무 내음이 온 몸 가득 전해졌다.

부족한 잠을 떨치며 정신을 맑혔다. 신새벽 이슬 머금은 풀 섶, 풀벌레들의 움직임과 계곡에 물 흐르는 소리가 여여(如如)하게 들렸다. 계사(戒師) 지안(志安) 큰스님으로부터 찰나(!)의 따끔함으로 ‘늘 깨어있으라’는 ‘념념자각(念念自覺)’_ 그 장엄한 수계의식이 진행됐다. 이날의 수계로 다시 태어난 <김해바라밀선원 제2기 불교대학> 도반들을 바라보며 꼭 1년 전 이 곳에 섰던 자신을 되돌이켰다.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여기까지 오게 된 나는 누구인가(?)’ 라는 그 평범한 화두를 끌어 안고 목메인 울음을 삼켰던 그 날의 전율이 온 몸을 휘감았다. 수계가 끝난 뒤 반야암 법당 뒤 울울창창한 소나무 숲길 힐링 산책길에 나섰다. 아침 공양을 한 후 사진 한 장의 추억을 남기며 <통도사 포교원 김해바라밀선원> 제2기 수계 및 템플스테이를 마무리했다.

***백중기도 입재(6. 21일 관음재일))_<수담 인해(仁海) 주지스님 법성게(法性偈) 강의>
특히 이번 백중(百中)에는 매(每) 재(齋) 때마다 법성게(法性偈) 화엄경(華嚴經)의 전체적인 사상(思想) 내용을 담고 있는 법문(法文)을 외우고 사경(寫經)을 하겠다. 또한 아침, 점심, 저녁 예불이 끝나면 법당 바닥에 그려져 있는 법성도(法性圖)를 돌겠다. 법성(法性)에 푹 젖어서 올 여름을 지나겠다. 법성게(法性偈) 강의에 앞서 백중(百中)이 되면 ‘시식(施食)’ 즉 재(齋)를 지내는데, ‘재(齋)’라는 의미에 대해서 다시한번 말씀 드리겠다.

정초에는 나를 위한 기도가 필요하다. 아울러 백중(百中) 때에는 조상 또는 내가 알고 있거나 모르고 있는 돌아가신 영가들을 위해 49일 동안 ‘재(齋)’를 지내는 것이 필요하다. 불교(佛敎)에서는 ‘제사’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유교(儒敎)에서 말하는 <제사>는 <고인(故人)에 대한 추모, 즉 효(孝)의 실천을 의미하며 돌아가신 분을 그리는 것>이다.

 
불교(佛敎)에서의 <재(齋)>는 돌아가신 영가(靈駕)에 대한 추모 및 돌아가신 영가(靈駕)의 극락왕생(極樂往生)을 기원하고 영가(靈駕)에게 부처님의 세계, 즉 깨달음의 세계로 입도(入道)하기 위한 불보살님의 가피와 부처님의 불법(佛法)을 들려줌으로서 그 영가(靈駕)가 스스로 깨우쳐서 원하는 곳으로 가게끔 하기 위한 것이다.

불교(佛敎)에서의 <재(齋)>라는 의미는 여러 가지로 쓰인다. 사시예불(巳時禮佛) 드릴때만 천수경(千手經)을 치고, 네가지 진언 시방성 정삼업진언, 개단진언, 금단진언, 정법계진언을 다시 하는 것은 ‘재(齋)’이기 때문이다. <재(齋)>라는 것은 많은 불보살님들의 가피를 받고 불법(佛法)을 들어서 나 뿐만아니라 돌아가신 모든 중생(衆生)들이 부처님 법(法)으로 바른 기원(祈願)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스님들은 오전 9시부터 11시에 삼보님께 불공 드리는 의식으로 부처님 당시부터 계속돼 온 공양의식(供養儀式)인 ‘사시마지(巳時摩旨)’ 하는 ‘재(齋)’를 중요하게 여긴다. 불보살님과 내가 다시 한번 나아가 불법(佛法)을 듣는 것을 <재(齋)>라고 한다. <재(齋)> 때마다 하는 ‘시식(施食)’이란 베풀어서 먹인다는 뜻이다.

<관음시식(觀音施食)>은 ‘변식진언’으로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로서 대비주의 신묘장구대다라니 심통력(心通力)을 빌어 지옥에 있는 중생(衆生)들 및 돌아가신 중생(衆生)들이 업(業)의 불길을 다 끄고 대자대비(大慈大悲)한 무장애업(無障碍業)의 세계로 들어가서 탐(貪).진(瞋).치(癡) 삼독(三毒)을 버리고 불(佛).법(法).승(僧)에 귀의, 극락왕생(極樂往生)하기를 발원(發願)하는 것이다.

지장경(地藏經)에 보면 천도재(薦度齋) 때 대중공양(大衆供養)을 하고 영가(靈駕)를 대신해서 공덕(功德)을 짓고 좋은 마음으로 불우이웃을 돕는 것도 공덕(功德)이 된다고 했다. ‘구면연아귀경(球面然餓鬼經)’에 보면 ‘아난존자’가 멀리 나갔다가 밤늦게 돌아오는 길에서 머리는 수미산만 하고 목구멍은 바늘 구멍만한 ‘아귀’를 만났다.
 
중생세간을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의 3단계 미망(迷妄)의 세계로 나눠 생사유전(生死流轉) 한다고 하는데 인과응보(因果應報)에 따라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의 육도(六道)를 유전(流轉)하는 것을 육도윤회(六道輪廻)라고 한다. 욕심, 탐심이 많은 사람을 가리켜 ‘아귀’라 하는데 ‘아귀’가 ‘아난’에게 “3일 후에 너는 죽어서 우리 같이 될 것이다.”라고 했다.

‘아난’은 부처님께 “이 액난을 어떻게 벗어납니까(?)”라고 물었다. 부처님께서는 “걱정하지마라 <무량위덕자재광명(無量威德自在光名)> 다라니를 외워라. 음식을 차려 놓고 나무다보여래, 나무묘색신여래, 나무광박신여래, 나무이포외여래, 나무감로왕여래 이렇게 다섯 여래의 명호를 부른 다음 아귀들에게 음식을 주고, 거불(去佛) 즉 불보살님께 법회 참석을 청한다.

모창(模唱)_영혼을 부른다. 천혼(天魂)_천도를 받는 제자가 누구냐. 착어(着語)_영가(靈駕)에게 부처님 법(法)을 들려준다. ‘아귀’들이 음식을 먹고 고통에서 벗어나 천상에 태어난다. 몸과 마음이 윤택해져서 업장이 청량해 진다. 각구 해탈 한다. 하생하사(何生何死)_태어남과 죽음도 없다. 이것이 <관음시식(觀音施食)의 유래(由來)>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경전(經典)의 핵심적인 가장 고차원적인 좋은 명구(名句)들은 <관음시식(觀音施食)> 안에 다 들어 있다. <법성게(法性偈)>는 마지막 <소대(燒臺)때 봉송(奉送)하는 노래로 가장 핵심적이며 품위 있고 높은 이치>가 적혀 있는 법문(法文)’이다. 맑은 식을 가진 영가(靈駕)에게 <화엄사상>, <법화사상>, <유식사상>, <선사상> 등 가장 높은 <법문(法文)>을 들려줘서 스스로 깨치도록 하고 있다.

<달마대사>가 소림사에서 면벽수행(面壁修行)으로 시절인연(時節因緣)을 기다린다고 뒤돌아 보지 않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부처님의 법문을 알겠습니까(?)” 요령을 흔들어서 영가(靈駕)의 마음을 일깨워줍니다. 바람이 소나무 잎을 스치며 지나가 듯이 하는 염불성으로 사진언(四眞言) 불공의 원만한 회향(廻向)과 마침을 고하는 진언(眞言), 풍송가지(諷誦加持)로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님의 <다라니> 위신력을 보여서 영가(靈駕)를 일깨웁니다.

 
‘중생(衆生)이 자비(慈悲)의 눈으로 바라보면 지옥은 텅 비어 있습니다. 지혜(智慧)의 눈으로 바라 보면 지옥은 텅 비어 있습니다.’ 하물며 연꽃이 피어나고,,,,,,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의 위신력이 있는 <다라니>까지 하면 오죽하겠습니까(?) 중생(衆生)들이 깨닫는 것은 ‘찰나행(刹那行)’ 입니다.”

<법성게(法性偈)>는 ‘화엄경(華嚴經)’의 핵심 사구게(四句偈) 법계(法界).법성(法性).불성(佛性).진여(眞如)를 말한다. 정신과 육체는 3:7로 <기도>는 <집중>이다. 49재 할 때 순서 지키며 집중해야 영가(靈駕)를 해탈(解脫) 시킬 수 있다. 경전(經典)에 있는 대로, 법(法)대로 하자는 것이다.

조선 태조 7년(1398년) 강화도 선원사에 있던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판을 신도들이 머리에 이고 걸음걸음마다 <부처님 가르침(法) 대로 살겠다>며 해인사(海印寺)로 옮긴데서 유래한 <정대불사(頂戴佛事>)의 마지막 순서에 <해인도(海印圖)= 법계도(法界圖)= 법성도(法性圖)>를 도는데 이것을 <요잡(繞匝)>이라 한다.

<다게(茶偈)>에서 조주가 ‘끽다거(喫茶去)’_“차나 한 잔 드시고 가십시오. 망령들은 고통에서 벗어나십시오. 백초차(百草茶)를 올립니다.” 팽주가 돌로 된 솥 ‘석정(石鼎)’에, “원컨대 망령들은 이 가피를 내린 음식이 널리 시방삼세(時方三世)에 퍼져서 <목마르고 배고픈 것>이 다 사라지고 <극락세계에 태어나게> 하십시오. 제가 오늘 드리는 이 음식이 ‘아난’이 준 음식과 어떻게 다르겠습니까(?)”라며 영가(靈駕)에게 관음시식(觀音施食)케 한다.

 
【부처를 찬미하는 시가(詩歌)로 경전의 사상을 집약해서 짧은 네 글귀로 읊은 게송(偈頌)인 금강경(金剛經)의 핵심 ‘사구게(四句揭)’는 <범소유상(凡所有相)/개시허망(皆是虛妄)/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즉견여래(卽見如來)/무릇 모양이 있는 것은/ 모두가 허망하니/ 만약 겉모양이 모양 아닌 줄 알면/곧 여래를 보리라>,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시인행사도(是人行邪道)/불능견여래(不能見如來)/겉모양으로 부처를 찾거나/목소리로써 부처를 구한다면/이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하는지라/끝내 여래를 보지 못하리라>,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온갖 유위(有爲)의 모양으로 드러난 법은/꿈같고 환상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고/이슬같고 또한 번개와 같으니/마땅히 이와 같이 관할지니라> 마지막 장엄영계(莊嚴靈界)다. 우리가 사는 이 곳이 바로 극락세계(極樂世界)다.】

***<법성게(法性偈)>는 화엄경(華嚴經)의 전체적인 이치를 다 통달(通達)해서 <7언 30구 210자>로 이뤄져 있다. ‘법(法)’에서 출발해서 끝날때는 ‘불(佛)’로 끝난다. 불법(佛法)이 다르지 않다. 화엄(華嚴)의 전체적인 내용이 다 들어 있는 불교(佛敎)의 법적 진리(眞理)의 세계를 압축해 표현 했다. 불교에서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법계(法界)’ 또는, ‘법성(法性)’이라고 한다. 우리가 듣는 것을 ‘불법(佛法)’ 이라 하며 부처님을 ‘법왕(法王)’이라고 한다.

‘색성향위촉법’ 즉 머무름 없는 실천을 의미하는 ‘육진(六塵;빛.소리.냄새.맛.감촉.의식작용)경계’를 ’법(法)‘이라고 한다. 법(法)대로 즉 ’물이 흘러가는 대로‘를 말하고 있다. 부처님의 진리(眞理)를 말하는 만물을 지배하는 법칙, 즉 ’자신을 등불로 삼고 가르침을 등불로 삼으라<자등명(自燈明) 법등명(法燈明)>’. <선택>과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부처님 법(法) <다르마(Dharma)>는 크게 2가지로 나뉜다.


이 세상 우주에 일어나는 일체 현상, 우주에 전개 되는 일체 만유의 참된 이치를 가리키는 【캐피탈 다르마(Capital Dharma)】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인과(因果)로 이뤄진 일체만유(一切萬有), 일체제법(一切諸法), 제법무아(諸法無我)의 모든 것, 즉 세상만물, 사물, 존재, 보이는 현상과 보이지 않는 마음의 ’법성원융무위상(法性圓融無爲相)‘을 가리켜 【스몰 다르마(Small Dharma】라고 한다.

불교(佛敎)에서 말하는 법(法)은 고정된 실체가 없는 <반야심경(般若心經)>의 전도몽상(顚倒夢相), 고정된 자성(自性)이 없는 ’스몰 다르마(Small Dharma)‘가 90% 이상이다.
 
의상조사(625~702년) <법성게(法性偈)>는 의상조사가 20세 때(662년) 법(法)을 구하러 원효와 함께 ‘경주 황국사’에서 출발해 당나라로 가다가 원효가 한 밤 중에 목이 말라 바가지에 든 물을 마셨다.

아침에 눈을 떠 보니 그것은 해골바가지에 담긴 촉로수(蜀路水)였다. 그때 원효는『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즉 <모든 것은 내 마음의 소치구나.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그 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만법(萬法)은 식의 작용이다.>라는 것을 깨닫고 당나라 가던 길을 포기하고 신라로 되돌아와 <대승(大乘)>을 이뤘다. 법화경(法華經), 화엄경(華嚴經), 금강경(金剛經)을 3대 대승경전(大乘經典)이라 한다.

<의상조사스님>은 해동화엄(海東華嚴)의 초조로, 중국화엄(中國華嚴)의 3대를 이어간 <지엄선사(智嚴禪師)>에게서 8년 동안 화엄(華嚴)을 사사 받고 ‘법성게(法性偈)’를 펼쳤다. <의상조사스님>과 동문인 <현수법장스님>이 어느 날 <선묘스님>의 집에 가서 <72가지의 도(圖)로 화엄경의 진리(眞理))를 표현>한 것을 내보였다. 그때 <선묘스님>이 ‘의상조사스님의 <일개도(一芥圖)>가 휠씬 더 낫다’라고 말 했다.

<선묘스님>은 의상조사가 창건한 낙산사, 부석사 창건 설화에 등장하는 판타스틱한 인물이다. <의상조사스님>이 세운 화엄도량은 해인사, 범어사, 부석사, 낙산사, 화엄사, 옥천사, 갑사, 미리사, 청담사 등......<의상조사>가 세운 화엄도량은 한국불교 전체를 이끌어 온 중심도량으로,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특성인 <호국불교정신>을 몸소 실천한 <호국신앙>의 총본산이다. 의상조사스님에 관한 이야기는 최치원의 <법장화상전>과 일연의 <삼국유사>에 전해 내려 오고 있다.

 
***<법성게(法性偈)>의 그림을 그려놓은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勝法界圖)’는 <7언 30구 210자>자기 자신의 수행(修行)의 완성에 관한 것과 남의 수행(修行)을 어떻게 하면 이롭게 하는가(?)하는 수행의 방편, 수행의 공덕에 대해서, <지엄대사>가 ‘72개의 도(圖)’를 그렸던 것을 <의상대사 스님>이 하나의 그림으로서 완성한 화엄의 근본 이치를 설명해 놓은 것이다.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勝法界圖)>를 <해인도(海印圖)>, <법성도(法性圖)>, <법계도(法界圖)>라고도 한다. ‘백중 천도재’가 끝나는 날 <설악산 봉정암>을 찾아 회향(廻向) 할 예정이다.

<의상조사 법성게(法性偈)>는 <화엄경(華嚴經)>의 이치에 관한 것으로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라고도 하는데 줄여서 <화엄경(華嚴經)>이라고 한다.【위대하고 반듯한, 바르고 넓은 이치의 ‘꽃’과 같이 장엄한 경전(經典)】이라는 뜻이다. 부처님의 이치(理致)를 ‘잡화음식’으로도 표현 하는데, 여러가지 꽃을 중중무진(重重無盡)의 인드라망으로 결국 모든 것은 거듭거듭 연결되어서 끊임없이 의지하면서 존재하는 세상, ‘흰백지’에다가 ‘검은’ 글씨로 적은 곧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勝法界圖)> 즉 해인도(海印圖)이다.

우리 바라밀선원 법당 바닥에 빨간 줄로 쭉 그어 놓은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勝法界圖)>를 따라 질서정연하게 하나의 수레바퀴처럼【부처님과 중생(衆生)이【하나되어 일불성(一佛性)】으로 나아간다. 이 세상 속에서 <평화와 사랑의 보시행>으로 조화롭게 살아간다는 것을 깨우치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통도사포교원 김해바라밀선원>에서는 지난 7월 20일 <일요가족법회>를 통해 일본에서 새벽에 도착한 <주지 수담 인해 스님>의 사제 <인경스님>을 모시고, <사시마지> 불공을 올렸다. 오늘 처음 <법상>에 오른다는 인경스님은 동국대학교 선학대학원 전체 수석 졸업의 재원으로, 현재 일본동경대학 석박사 과정 수학중이다.

,대한불교청년회 천공불교여성중창단>의 음성공양 ‘삼보님께 귀의합니다’ 삼귀의례 및 ‘보현행원’에 이어 인경스님께 ‘청법가’로 법을 청(請) 했다. 잠시 입정(入靜)이 있은 후 법상에 오른 인경 스님은 “법상을 마련해 주신 수담 인해스님의 의도는 ‘좀 더 성숙하라’, ‘남에게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공부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겠습니다.”라며 겸손하게 연신 부드러운 미소를 만면에 짓고 있었지만 그 기대에 어긋남이 없으리라는 결기(決起)를 느낄 수 있었다.

“불교에서 필요한 것은 <신심(信心)>과 함께 <도반(道伴)>이라고 생각합니다." 쌍둥이 <신경스님>과의 관계를 예로 들며, ”내 속에서 찾은 또 다른 나를 인식하는 궁금증을 거울을 비쳐서 바라보는 것“으로 설명했다. 여기서 ‘같은 도형인데 원근 또는 조건이 뒤바뀌어 <술잔>으로도 보이고 보기에 따라서는 <마주보는 똑 같은 사람의 옆 얼굴로>도 보이는 덴마크의 심리학자 루빈(Rubin Edgar_John)의「반전도형(反轉圖形)」의 사유(思惟)를 설명하려는 것 같았다.

갑자기 법상에 있던 물컵을 집어들어 보이며 “이 컵이 실제 하겠습니까(?) 안 하겠습니까(?)”라고 묻더니 “이 컵은 실제 합니다.”라고 말해, 법문을 듣고 있던 도반들이 한바탕 웃었다. “그러나 내가 본대로 있지 않습니다. 이 컵은 수 많은 원자와 분자로 이뤄져 있습니다. <관념>으로 이뤄져 있는 것이지.....대상 경계는 없고 마음(心)뿐 입니다. 집착하는 마음이 들어가서....<선택>에 의해서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즉 <오취온(五取蘊)>은 나의 고통의 원인(原因)이 됩니다. 고통의 세계가 됩니다.

 
유식오경(唯識五境) 즉 ‘지옥(地獄)이 존재한다’는 사람에게 ‘지옥이 존재합니다.’ ‘지옥(地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에게 ‘지옥이 존재합니다.’ <깨닫지 않은 이상 지옥(地獄)이 존재합니다.> 깨달은 사람은 꿈을 꿈지 않는다고 하지 않습니까(?)”라며 “우리가 살아가면서 지금 우리는 왜 이 자리에 있습니까? 식(識)을 공유(共有)하기 때문이다. 오늘을 위한 축제처럼 우리는 수 많은 삶을 살아가면서 공통된 의식(意識)을 수 많은 인연(因緣)으로 이어 왔습니다.”

"신경스님이 <아!> 라고 하면 <어!>라고 화답이 돌아온다“며 ”이것은 유식(唯識)쪽에 가깝다.“라고 말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_ 모든 것은 마음(心)입니다.> 사람의 모든 것은 다 마음 먹기에 달려 있습니다. 내가 생각을 한 것에 따라 볼 수 있습니다. 생각한 것에 따라서 세상을 보게 됩니다. 스님들 눈에는 스님들만 보입니다.

<일체유심조(日遞唯心造)>는 궁극적으로 본질을 보려면 <내가 본대로 세상은 그대로 있지 않습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뜻은 의지적인 것이나, 이해하는 것이나, 뜻대로 되는 것이나, 모든 것은 내가 본대로 되지 않습니다. <식(識)은 오직 식(識)일 뿐이고 대상세계는 없습니다.> 모든 것은 마음 뿐이고, 세상 모든 것은 허망(虛妄)한 것입니다.

즉 열반(涅槃)이라는 목적성이 있는 대승(大乘)의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고통의 현실세계를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하는 문제와 나와 우주의 배후에 있는 진리는 무엇인가를 놓고 알음알이를 바꾸어 지혜(智慧)를 얻는다고 하는 유식(唯識)의 최종 목적은 <전식득지(轉識得智)>입니다.
유식불교(唯識佛敎)의 전생과 내생으로 이어지는 업력(業力)의 저장고와 같은 불성(佛性) 즉 청정식(淸淨識) 「제십팔식(第十八識) 아뢰야식」은 불교(佛敎)의 사족(蛇足)으로,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오온(五蘊)이 무아(無我)라는 원시불교의 기본원리인 오온무아(五蘊無我) 하나 속에 다 <통섭(統攝)>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열강했다.

***【통섭(consilience)=막힘없이 여러 사물에 두루 통하는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을 연결하고자 하는 통합학문 이론으로, 19C 영국의 자연철학자 윌리엄 휴얼의「귀납적 과학」이라는 책에서 ‘컨실리언스’라는 말을 처음 사용했다. 우주의 본질적 질서를 논리적 성찰을 통해 이해하고자 하는 고대 그리스의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통섭(統攝)이라는 단어는 <설명의 공통기반을 만들기 위해 분야를 가로지르는 사실들과 사실에 기반한 이론을 연결함으로서 지식을 통합하는 것을 뜻한다.> 한국에서는 「사회생물학」을 저술한 <인본주의적 생물학자>로 <인문학>과 <자연과학> 사이의 간격을 메우고자 노력하고 있는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統攝)_지식의 대통합>을 통해 통섭(統攝)의 개념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윌슨>은 역사상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르네상스의 시발점인 베키오 궁전 ‘메디치가(家)의 식탁’>을 떠올리게 하는「과학. 인문학. 예술」이 사실은 <하나의 공통된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모든 탐구자에게 그저 보여지는 상태 뿐만이 아닌 <깊이 숨겨진 세상의 질서를 발견>하고 그것을 간단한 <자연의 법칙>들로 설명하고자 했다. <불교>와 <성리학> 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용돼 온 용어로 <‘큰 줄기를 잡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창조(創造)의 아이콘 애플의 <스티브 잡스>도 ‘학문의 통섭’을 매우 중요하게 강조했다.】***
결국 한국불교(韓國佛敎)의 귀착지(歸着地)는 중관사상(中觀思想) 즉 치우치지 아니하는 <중도(中道)>이다. ‘참 나’라거나 자아(自我)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깨달음>이 있을 뿐이다. 즉 내 안의 절대적인 <참 나>를 찾는 것이 아니라 욕심과 악의에서 벗어나 탐(貪).진(瞋).치(癡)를 초월(超越),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것 마저 변하게 하는 무상(無常)과 법(法)에 걸림 없는 무아(無我)를 체득(體得), 해탈열반(解脫涅槃)하는 것이다.<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고(告)로 불교는 영혼을 인정하지 않고 윤회(輪廻)를 주체로 설정, 감각기관인 <6근(六根)=눈(眼).귀(耳).코(鼻).입(舌).몸(身).마음(意)>으로, <6경(六境)=시각(色).촉각(聲).후각(香).미각(味).감각(觸.진리(法)>을 감지하며, <6식(六識)=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으로 인식하는, 십팔식(十八識)을 대비시켜 <불성(佛性.암마라식)> 마저도 어떤 실체가 없는 텅 빈【공(空)】임을 가르치고 있다.

인간 존재의 구성 요소 눈(眼根)으로 사물(色)을 보면 인식하고, 코(鼻根)로 냄새(香)를 맡으면 사물(香)을 인식하는 식별 작용, 즉 너와 내가 더불어 <공존하는 사바세계 실상>, 그 세상을 사는 안목(마음)을 총칭 18계(十八界)라 한다. <진리(眞理)를 알고, 생사(生死)의 도리를 깨닫고, 집착 없이 언제나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자(者)가 가장 높은 곳에 이른다>는 대승보살(大乘菩薩)의 사상(思想)이 곧 불교(佛敎)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인경스님은 또한 “꿈과 현실은 같을까요(?) 다를까요(?) 꿈과 현실은 실존의 측면에서 같습니다. 유식불교(唯識佛敎)에서는 꿈속에서 봤던 것과 실제적으로 봤던 것은 다르다고 합니다.” 대연각 화재를 예를 들면서 “무심히 남을 따라가서 많이 죽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훈습(訓習)이 되어 있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아! 이것이 바로 화택(火宅)이구나. 우리는 마치 불이난 집에서 무의식적으로 훈습(訓習)된 바에 따라서 사는 것이 아닌가(?) 평상시에 자기 모습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br/>
불교(佛敎)는 혼자 있을 때 가장 잘 살아야 합니다. 잘 해야 합니다. 불교(佛敎)는 혼자 있을 때 보는 관객이 한 사람 있습니다. 그 관객은 바로 자기자신 입니다. ‘경험을 간직하고 생명을 유지하며 모든 행위를 발생시키는 근원적인 마음의 존재를 발견’하게 하는 <제팔아뢰야식(第八阿賴耶識)>에 모두 다 각인(刻印) 됩니다. 따라서 모든 것은 자기자신이 만듭니다. 제 팔아뢰야식(第八阿賴耶識)의 근간에 의해서 이 세상을 만듭니다.

이 세계를 공유하기도 하는 측면도 있고, 개별적으로 따로 보는 세계이기도 합니다. 이 따로 보는 이 세계는 자기자신이 만들어서 자기자신이 스스로 고통과 즐거움을 감수합니다. 불교 유식(唯識)의 입장에서 보면 혼자 있을때도 훈습(訓習)하는 바를 아주 철저하게 정미롭게 스스로를 관찰해 나가야 합니다. 기도(祈禱)는 인계량(忍界量)이 있습니다. 물도 100℃가 돼야 끓습니다. 기도(祈禱)는 언제 이루어지겠습니까(?) 이루어질 때가 돼야 이루어집니다.

 
평상시에 우리는 기도(祈禱)는 순일하지 않으면서 받는 복락(福樂)은 순일하길 바랍니다. 내가 지금 받는 복락(福樂)이 순일하길 바라면 평상시에 훈습하는 바도 순일해야 하며, 또한 내가 짓는 공덕(功德)의 모습 또한 꾸준해야 내가 나중에 받는 복락(福樂)의 과보(果報) 또한 꾸준하게 오게 됩니다.

핵심적인 것은 자기 스스로의 무의식(無意識)을 잘 단련 해서 훈습(訓習) 시켜야 합니다“라며 첫 법상에 올라 기념비적인 법문으로 <대한불교조계종통도사포교원 김해바라밀선원> 신도들에게 단비같은 깨달음을 전해 박수 갈채를 받았다. <대한불교청년회 천공불교여성중창단>의 <성불을 향하여> <사랑하는 마음> 두 곡의 찬불가 음성공양과 백중4재 관음시식(觀音施食)이 이어졌다.

<대한불교 조계종 통도사 포교원 김해바라밀선원> 주지 인해(仁海)스님은 백중(百中) 5재인 지난 27일(일)에는 여직까지 펼쳤던 법성게(法性偈) 법문(法文)을 다시한번 신도(信徒)들에게 주입시켰다.
 

아울러 “캐나다에서 공부할 때 신도들이 <부처님 법을 그대로 이어가는 승공법회(僧供法會) 하는 것에 감동 받아 한국에 가면 꼭 하겠다>고 결심했다”며 “우리나라에서 승공법회(僧供法會) 진행하는데 몇 곳 없다. 다음주 토요일 백중(百中) 6재 칠석(七夕)에는 <조계종 고시위원장 요산(樂山) 지안(志安) 큰스님>을 모시고 제2회 승공법회(僧供法會)를 진행하겠다.”라고 말했다.

“우란분절(百中)의 본래 의미는 부처님의 제자(弟子) 목련존자가 어머니를 천도(薦度)하기 위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께서는 스님들 하안거(夏安居) 결재 회향(廻向) 음력 7월 15일 날을 기해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천도재(薦度齋)를 지내라고 했다.

<백중(百中)의 본래 의미는 합장 공경(恭敬)으로 스님들께 공양(供養) 올리는 날이다.> 작년에 제1회 승공법회(僧供法會)를 진행했다. 백중 기도 회향에 맞춰 불전에 올리는 공양미(供養米)는 <자비의 쌀 나눔>행사로 불우 이웃 독거 노인들에게 나눠드리겠다.

오는 8월 12일에는 관음기도(觀音祈禱) 500일에 맞춰 설악산 봉정암 성지 순례(聖地巡禮)로 회향(廻向)할 예정이다.“라며 백중(百中)의 의미와 법성게(法性偈) 전체적인 내용을 마무리했다. 이밖에도 점심공양 후 도반(道伴)들은 다경실(茶景室)에서 빛깔 고운 얼음 동동 띄운 청량하고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오미자 차(茶)를 마셨다. 한 여름의 무더위를 푱~ 물리쳤다. 화안한 얼굴로 다들 행복한 담소(談笑)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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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4-07-2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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