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역사소설 교육이나 교양의 목적은 지식을 통해 견식을 기르고 행위를 통해 덕을 기르는 데에 있다. 교양 있는 사람이나 이상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이니 하는 것은 반드시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나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사물을 올바르게 아끼고 보호하며 증오할 것은 증오할 줄 아는 사람을 말한다. 독서에서 얻어진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실제 생활에서 발현되지 않으면 그것은 쓸모없는 지식을 껴안고 동거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공자께서는 사려(思慮)를 동반하지 않는 학식은, 학식을 동반하지 않은 사려보다도 위험하다고 말했다. “배우고 생각하지 않으면 경망하고 생각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는 말과 같다.
독서는 지식의 습득에 목적이 있는 것이라 사색과 사유를 할 수 있는 심성을 기르는 데에 있다. 자신만이 옳다는 아집을 피하고 지식의 보편성을 밝히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이런 자세에서라야 과학과 사상과 예술이 꽃피는 것이다. 독서는 자기 껍질을 벗고 자기 울타리를 확대해 나가는 작업이다. 육신의 성장을 정신 연령이 따라가지 못한다면 세상은 온통 어리석음에게 점령당하는 그야말로 바보들의 세상이 되고 말 것이다. 독서는 사유하고 탐구하는 인간을 만들어 준다.
책을 가까이 하고 늘 책을 읽는 사람의 품성은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독서는 자신의 근심과 걱정. 시름을 털어내 주고 미래의 희망을 열어 주고 인생과 세계를 객관적인 안목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영역을 벗어나기 어렵다. 자기 생각만이 옳다는 편견을 갖기 쉽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일반화시키고 유흑시키면서 세계관을 갖게 된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자기 합리화 경향이 있다. 독서는 그러한 위험을 벗어나게 하는 유일한 길이다.
묵묵히 선 채로 만물을 길러주는 산을 보자. 산은 높으면 높을수록 골짜기도 깊고 험준하다. 그러기에 높은 산의 품속에 안겨진 인간은 저절로 마음이 평온해지고 또 숙연해진다. 책을 많이 읽어 덕망과 지혜가 있는 사람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신도 모르게 몸과 마음을 가다듬게 된다. 책에는 음료수처럼 훌훌 마셔서 좋은 글이 있는가 하면 죽처럼 대충 씹어 삼켜서 좋은 글이 있고 오래도록 음미해야 할 글이 있다. 진리로 가는 길 찾기로서의 독서는 천천히 충분한 시간으로 소화시켜야 한다. 어제의 모든 고달픔과 쓰라림을 어둠에 묻어 버리고 새롭게 밝아오는 안개 걷힌 새벽빛처럼 백지의 마음이 돼야 한다. 독서의 깊이는 체험의 깊이에 따라 달라진다. 연령과 환경, 그때 그때의 사정에 따라 적절한 책을 만나는 것처럼 행복한 일은 없다. 나는 어릴 때부터 책을 사랑했다. 책에 대한 사랑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지금에도 계속되고 있다. 책을 사랑하는 이유와 열정은 삶을 기름지게 하기 때문이다. 독서는 우리의 삶을 푸르게 하는 엽록소와 같다. 현대인의 생활은 사실 문자와 더불어 사는 생활의 연속이다. 그것이 컴퓨터라고 해도 문자는 읽어야 한다.
인류 문화를 창조한 심오한 철학책이라 할지라도 결국 한 문장 한 문장이 모여서 이뤄진다. 한 문장이 다른 문장을 만나 대립과 병렬, 그리고 반발과 부연을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며 작은 시내를 이루고 그 시내는 강물을 이루고 저수지를 만든다. 과학과 물질 문명의 발달과는 반비례로 인간의 정서가 메말라 가고 인간 상호간 불신의 골이 깊어져 가는 것은 독서 결핍증이 곧 사고(思考) 결핍증을 가져온 때문이 아닐까 싶다. 책은 말 없는 스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