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애인고용공단 부산직업능력 온 국민이 함부로 말하기도 조심스럽고, 함부로 행동하기도 조심스러워야 했던 지난 2개월, 미래 대한민국의 주역이 되기 위해 온 열정을 마음껏 펼칠 나이의 꽃다운 우리 젊은이들의 영혼 앞에 국민 모두가 가슴 아파한 세월호 사고.
“신속한 대처를 했더라면, 그 전에 안전점검이 제대로 이루어졌더라면 그 소중하고 고귀한 생명을 살릴 수도 있었는데..”하는 허탈, 슬픔이 자꾸 내 가슴속, 뼈 속 까지 저미어 온다. 시간 속으로 묻혀 버리고 잊기에는 너무나 안타까운 대참사이기에 반드시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 할 것이다.
행여나 망각이라는 두 글자는 결코 생각해서도 말해서도 안 될 것이다. 얼마 전 모처럼 가족끼리 저녁을 먹으면서 중학교 1학년에 갓 입학한 아들에게 세월호 사고에 대해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아들 ! 이번 세월호 사고가 왜 일어났을까? 네 생각을 말해보렴." 아들은 머뭇거림 없이 의미심장한 대답을 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사고 이후 연일 사고의 원인으로 주목하는 이른바 관료주의, 적폐, 이기주의, 낡은 관행, 비정상, 부정부패 등 많은 사고원인 분석이 온종일 언론에서 거론되었고, 하나하나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중학교 1학년의 아들은 마치 촌철살인같이 “아빠 ! 이번 사고는 0.1%의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어!” 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순간 0.1%와 가능성이란 말에 아들의 행간의 뜻을 이해하는데 잠시 혼동이 되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들의 역설적인 대답이 바로 우리 한국 사회 구석구석에 배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다시 말해 안전은 0.1%의 위험도 결코 방치해서도 안 되며, 이번일도 0.1% 위험성을 무시한 것이었다.
이것은 어쩌면 우리 사회 모두가 부정할 수 없는 지극히 당연지사 상식이라고 인정하면서 살아왔지만, 그것을 실천적 행동 습관으로 옮기지 못한 것이다.
아들이 대답한 그 행간의 뜻의 진실은 적당주의였고, 설마주의였다. 그렇다!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온통 적당주의, 설마주의가 도사리고 그것이 쌓이고 쌓인 것이다.
0.1%의 위험 가능성을 우리는 너무나 소홀하게 본 것이다. 아니 안전에 대해서는 0.1%가 아닌 0.00001%라도 위험 가능성도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안전에는 오로지 100% 이상의 완벽성과 완벽함의 무결점만이 있어야 하고, 또 그것은 지속성을 가져야 한다. 바로 아들이 말한 0.1%의 가능성을 방기하고 무시한 것이 이렇게 상상할 수가 없고, 어처구니없이 수많은 젊은이들의 생명을 잃게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사회 구석구석의 안전사고를 부정부패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다른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말자. 낡은 관행의 비정상, 부정부패, 안전사고, 이기주의, 보신주의 이 모든 것들은 바로 0.1%의 가능성을 무시한 “나하나 쯤이야 ” 적당주의, 설마주의에서 싹이 나는 것이다.
우리의 역사에서 시대를 초월해 우리 온 국민에 가슴에 기억되고 남아 있는 성웅 이순신은 거안사위를 평생 동안 몸소 실천한 분이시다. 이는 평안할 때에도 위험과 곤란이 닥칠 것을 생각하며 잊지 말고 미리 대비(對備)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번 세월호 사고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미래 후손까지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반만년의 역사에서 숱한 고난과 역경을 극복한 민족이다. 다시는 0.1%의 가능성을 무시하는 적당주의, 설마주의가 이 땅에서는 완전히 사라져야 할 것이다.
다시는 임진마창(臨陣磨槍)으로 평소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고 일을 당해서야 허둥지둥하는 그런 무능함은 없어야 할 것이다. 유비무환으로 미리 준비해놓으면 근심이 없는 것과 같이 사회 구석구석 100% 완벽할 수 있도록 제도화, 생활화되어야 하고 나아가서 그것이 국민 생활 철학으로 정립되어야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안전 최우선이 국민의 생활 실천으로 온 사회 구석구석에 스며들 때 대한민국은 0.1%가 아닌 0.00001%의 안전 위험 가능성도 허용하지 않는, 온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철저히 보호할 수 있는 안전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미래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꽃다운 젊은 학생들의 명복을 빌고, 희생자 유족 분에게 깊은 위로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