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기사수정
 
국립동경박물관은 호류지(法隆寺: 법륭사)가 소장하고 있던 전북 김제 금산사 향완받침대를 전시하고 있다. 정식명칭은 대정18년명금산사청동은입사향완이다. 香垸(향완)은 향로의 일종으로 그릇모양의 몸체에 나팔모양의 높은 받침대를 갖추며 이런 형식을 高杯形(고배형) 향완이라 부른다.

향완에는 大定一八年(대정18년: 중국 금나라 연호 고려 명종8년: 1178년) 祇毗寺(기비사) 주지 三重大師(삼중대사) 惠琚(혜거)스님이 금산사의 仁美大師(인미대사)와 함께 금산사 미륵전에 奉獻(봉헌)했다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銘文(명문) 89자 가운데 나타나는 祇毗寺라는 절이름과 역사는 고려시대 문헌 및 불교관련 어떤 기록에서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가 1972년 10월 26일 부산시 기념물 제3호로 지정한 만덕사지 발굴을 통하여 화려하게 부활했다. 만덕사지(萬德寺址)는 전체면적 3만 2,865m2 규모로 동서 58m, 남북 54m, 높이 4m에 달하는 장방형의 축대를 세워 만든 엄청난 규모의 사찰임이 발굴결과 밝혀졌다. 金堂地(금당지)의 규모만 범어사 대웅전의 4배가 넘는 대사찰이었다.

만덕사 절터 앞에 터널을 통과하기 위한 도로를 개설하기 전 동아대학교 박물관(발굴책임자: 심봉근)의 3개월(1971년 8월 18일부터 11월 28일까지)에 걸친 지표 조사를 시작으로 1979년 2월 부산박물관이 넓게 흩어져있던 석탑, 불상대좌, 석등 등의 석재를 부산박물관(복원 책임자: 박경원)으로 옮겼고 3층 석탑(높이 3.35m)을 복원했다.

1차 발굴(발굴책임자: 하인수)은 1990년 10월 8일부터 1월 30일까지 55일간 이루어졌다. 금당지로 추정되는 부분에서 팔각좌대석 및 연화문하대석을 비롯하여 若丑(야축)이라는 글이 음각된 기와조각과 함께 祇毗寺라는 글이 새겨진 기와 3점이 출토되면서 만덕사지는 부산지역 최대 불교유적지로 떠올랐다.

2차 발굴(발굴책임자: 이혜련)은 1996년 9월 20일부터 12월 31일까지 이루어졌으며 금당지 앞쪽 마당을 발굴했다. 기와지붕의 용마루 끝에 올리는 대형치미가 출토되면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날개, 몸통에 돋을새김으로 연꽃무늬(蓮花紋: 연화문)를 장식한 만덕사지 출토 치미(鴟尾)는 그 크기면에서 황룡사지 출토 치미에 버금가는 고려시대 치미 가운데 가장 큰 것이다. 1차 때와 마찬가지로 祇毗寺라는 글이 새겨진 기와와 함께 佛房(불방) 寶(보)라는 글이 새겨진 기와조각이 발굴되었다. 3차 발굴(발굴책임자: 홍보식), 조사면적은 1,650m2(500여평)로 2001년 9월부터 2002년 1월 31일까지 총 113일간 발굴했다. 금당지와 뒤편 건물을 이어주는 회랑터와 講院(강원)으로 추정되는 건물터 2곳이 확인되었고 해무리굽청자와 함께 長興庫(장흥고)라는 글이 남아있는 분청사기가 출토되었다.

1, 2차 발굴 때와 마찬가지로 毗寺(비사) 面(면) 祇毗寺 등 글을 새긴 기와조각과 함께 松善寺(송선사) 이름이 새겨진 기와 4점이 출토됐다. 복원의 불씨가 살아나던 만덕사지의 존재가 잊혀질 무렵 2009년 3월 26일 축대모서리에 물이 막혀 배수공사를 하다가 옛궁전 건축에서 쓰이던 봉황머리모양 잡상, 치미 날개와 상단부분, 연꽃무늬 수막새 등과 함께 祇毗寺 글을 새긴 기와가 출토되면서 또 한번 주목을 받았다.

한국 최초의 불교사전에는 고려 30대 충정왕 3년(1351년) 경남 동래군 우이면 만덕리에 만덕사를 창건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고려사”, “고려사절요”의 기록에 따르면 고려 28대 충혜왕의 서자 釋器(석기)왕자가 머물렀던 절은 만덕사였다. 고려 31대 공민왕 때 석기를 받들어 추대하려던 음모세력의 주모자였던 강윤충(康允忠)이 동래현령으로 좌천되었을 때 만덕사의 흔적을 지우고 기비사로 바꾸었을지도 모른다는 향토사학자들의 주장은 확인할 길 없는 역사의 수수께끼로 남았다.

만덕사지는 통일 신라 때의 평지 쌍탑 가람형식으로 고려초기에 국가적인 지원으로 건립된 사찰이며 조선시대까지 그 명맥이 이어져 온 국찰(國刹)급의 사찰이었음이 발굴을 통하여 증명되었다. 그러나 금당지 앞부분 즉 현재 만덕사 대웅전과 요사채 지역은 아직까지 발굴한 적이 없다. 발굴을 통하여 금당지와 관련된 또 다른 유적과 출토 유물을 확인한 후 복원의 기초를 마련해야 한다. 만덕사지에서 1Km 밖에 떨어지지 않은 기비(其比)골에서 발견된 송선사와 기비사 그리고 만덕사지의 미스터리는 언젠가 밝혀질 것이다. 부산불교 최대 유적 만덕사지는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0
기사수정
  • 기사등록 2014-02-13 00:00:00
기자프로필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오늘의 주요뉴스더보기
부산은행
부산광역시 상수도사업본부
동양야금공업
원음방송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