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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은 각자의 취향과 수준에 맞는 읽을거리를 스스로 찾아가는 발품의 즐거움이 가득찬곳이다. 백화점이나 수퍼마켓에 진열된 여느상품과는 달리 이책저책을 뒤져 훑어보기도 하고 필요할때는 간단한 메모도하면서 꽤 오랜시간을 머무르는 번잡한 도심속에서 몇 안되는 느림의 문화공간이었다.

다양한 책들이 빼곡히 진열된 그 엄청난 책속에서 내가 읽었슴직한 책이 과연 몇 권이나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내 알량한 독서량에 주눅이 든다.

짙어가는 가을, 오랫만에 서점에 들러 이리저리 둘러보다 ‘공감의 시대’, 8백 페이지나 되는 무게감 때문에 언제 다 읽을까 싶어 아득해져 내려놓고 만다. 이번엔 하바드대학의 어느 철학교수가 쓴 ‘정의란 무엇인가’를 훑어본다.

공정사회가 화두로 떠오른 세태의 반영인지 50만부나 팔렸단다. 호기심으로 앞부분 몇 페이지를 읽어본다. 강의록이어서 그런지 다양한 실화들을 인용해 자칫 현학에 빠져 허우적 거릴 묵직한 개념들에 더 이상 매달려 있을 나이가 아니란 핑계로 제자리에 내려 놓는다. 또다시 눈길이 머무는 곳에 ‘욕망의 경제학’이란 책이 눈에 띄는데 애써 눈을 피하고 자리를 옮겨 소설이나 수필, 시집이 있는 쪽으로 기웃거려 본다.

이렇듯 서점에 들르면 늘 지적 욕심이 활개를 치고 나이답잖게 열정이 비집고 나오곤 해서 좋다. 읽고 싶은 책은 너무 많고 읽을 시간은 놀면서도 왜 그렇게 시간이 빠듯한지, 문득 내 하루의 독서시간을 가늠해 본다. 언제부턴가 내 일상에서 책읽는 시간이 빠져 있음을 깨닫고 이내 숙연해 진다. 수북이 진열돼 있는 책들이 한줌도 안된 나의 독서량에 혀를 날름거리며 빈정거리고 있는 것 같아 남세스럽고, 책속의 지혜와 내 무지사이의 간극은 오기로 들이밀 수 없는 엄정함이어서 더 무참하다.

더욱이 생소한 작가들, 다양한 책들을 보고 있으면 글 쓴이에 대한 경외감과 함께 변해가는 세상의 모습들이 너무나 또렸하고 실감이나서 놓아버린 꿈을 다시 꿰고싶어선지 가슴에 슬며시 불이 댕겨 온다.

한참을 한가로이 시간의 무늬가 알싸한 책향기에 젖어있는 아늑한 서점안을 이리저리 훑고 다니다 지난번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은 기억이 나서 이번에 새로 출판된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라는 책과 에세이 한권을 사들고 거리로 나왔다.

그러고 보니 서점은 서점을 찾는 이들에게 뭔가 잊고 지내던 소중한 것들을 내보이며 미망을 깨우쳐주는 곳이란 생각이 든다. 서점은 나의 모자람을 일깨워 겸손함을 찾아주고 게으름을 책하며 오류와 아집으로 아무곳에나 내뛰던 무지함을 다독여 주고, 시간에 쫓기던 세속에서 여유와 풍요로움을 선사하며 꿈과 희망을 나누어 주는 지혜를 서점에서 찾곤한다.

이번에는 발길을 돌려 자갈치시장, 국제시장, 먹자골목 그리고 깡통시장을 지나 보수동 네거리 큰길안쪽에 들어서면 동·서로 이어지고 있는 골목길, 여기가 대한민국 뿐 아니라 세계 유일의 보수동 헌책방 골목이다. 50년대 초 광복이후부터 일본인들이 버리고 간 책들과 미군들이 보던 헌책, 학생들이 내다 판 참고서 등을 끌어모아 좌판대에 얹어 놓고 팔던 책방골목이 60여년이 지났다.

보수동 책방골목이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게된 데는 헌책 새책이 같이 어우러진 전국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는 문화의 골목, 책방골목으로 자리 잡혀 부산 문화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럴리 없겠지만 만약 책방골목이 사라진다면 보수동 자체가 사라져 버릴만큼 보수동 책방골목은 우리의 뇌리에 지워지지 않을 것이라고 되뇌이면서 시드니 셀던의 ‘영원한것은 없다’라는 책을 반값에 사들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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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3-11-1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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