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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함은 오로지 처절한 삶의 현장에서도 무언가에 열중하고 정의로운 논리속에서 진실만을 도출하려고 애를 쓰는 정신작업을 뜻한다.

이러한 글을 쓰는 사람들은 대다수 지극히 낯선 언어의 유혹을 거부하고 일상적인 보통의 언어를 통해 누구에게나 쉬이 다가갈 수 있는 실체를 찾는다.

어쩌다 반복되는 글과의 만남에 싫증을 느껴 오직 도전과 실험정신에서 비롯되는 일념만으로 원천이 명확치 않은 낯선 항구에 돛을 내리고도 대체로 이내 후회의 탄식을 한다.

하지만 언제나 창조적이고 도전적 삶을 추구해야 하는 기자들에게 있어서 평자의 오래된 지론이나 글귀만을 따라서는 안 된다고 하니 참 난해한 과제다. 언어의 남용을 경계하면서 화려함보다는 올곧고 진솔된 속살에만 관심을 가지다보니 이것 또한 낭패를 당하는 게 부지기수다.

실제로 대쪽같은 원칙으로 통하는 인간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소통 속, 혹간의 ‘정론’이라는 글들을 보고는 ‘생각이나 주관의 차이’라고 편차를 둬버린다.

참 답답한 일이다. 작금에 와서 턱을 괴며 생각한다. 서로의 자존감을 존중하며, 상대의 영혼을 소중하게 인식하는데 집중해야 한다고.
내가 먼저 나서는 것보다 듣기에 열중하며 조금은 찬찬히 상대를 격려하며, 무엇이라도 된 것처럼 선과 악을 감히 저울질하는 망동을 행해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언어는 생명이다. 당신의 글로 함부로 당신의 뒷사람이나 주위를 어지럽게 하지 말란다. 어쩌면 당신의 글이 남긴 발자취는 혼돈의 삶을 살아가는 뒷사람에게는 인생의 이정표라고 나무란다.

글은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겸허함, 깨끗한 투명성, 어울림의 유연성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 무엇보다 물과 기름의 융합을 거역하는 공명정대함이 우선의 교시가 되도록 깨달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여 자신만의 합리적인 의연한 글의 탑을 쌓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한다. 물론, 글은 현재의 삶에서 살을 부비고 살아가며 감성과 예감을 담아야한다. 그러나 동시대 우리가 겪는 시대고(時代苦)에 대해서도 지펴야 할 소통의 귀중한 불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늙은 여가수의 쉰 목소리도 연륜의 아름다움으로 승화할 수 있음을 터득해야 한다.

글이 착해지면 마음도 착해진다. 그래야만 또 그 글이 맑아진다. 절박한 삶의 변화나 발전은 틀에 박힌 구조나 제도의 보완보다는 조용한 내발적 변화가 우선되어야만 비로소 글의 존경스러움을 깨닫게 된다는 얘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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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3-10-0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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